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3대 독자인 아버지께 명문가인 경주 김씨 가문에서 다섯 살 위인 열 여덟에 시집와서 우리들 3남2녀를 낳아 마흔 일곱에 혼자가 되신 어머니가 겪으셨을 가시밭길을 새삼 짚어보게한 이 글은 더도 덜도 없이 ‘딸 많은 죄’말고는 나의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글쓴이가 말하고 있듯 나의 어머니 사전에도 ‘희생’이니 ‘봉사’니 하는 단어가 없었던 것 같았다. 필요로 하는 그 역할, 이왕 해야 하는 일이라면 스스로 맡아서 그 일을 잘 하고, 그 일을 즐기는게 보람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점이 고스란히 닮았다.
우리 사회에서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일을 해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너는 네가 선택한 짐을 짊어질 수 있단다. 짊어질 수 있기 때문에 너는 그 짐을 선택하는 것이란다. 짐은 질 수 있는 사람한테 온단다”라는 이 말은 어머니의 삶이 바탕이 되었기에 힘이 실린다. 내가 선택한 길, 내가 선택한 방식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삶의 큰 자산인 것이다.
무거운 짐을 가볍게 지셨던 나의 어머니! 여기 이제사 철이 든 불효자는 엎디어 웁니다. 어머니, 용서하소서.
말 많고 탈 많던 대통령선거도 끝났고, 이제 총선을 목전에 두고 있다. 큰 일 치르면 의례히 뒤따르는 논공행상, 그러나 논공행상이야말로 냉정, 또 냉정해야 한다. 자칫 亡國의 불씨를 키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긴 얘길랑 접고, 그 원칙을 催漢綺(최한기)의 ‘人政’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무릇 논공행상은 그 당사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많은 백성을 권장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그 적절함을 잃어서 상금만 주어야 할 사람을 고관으로 봉해주거나, 고관으로 봉해야 할 사람을 약간의 승진에 그치거나, 승진시킬 사람을 승진시키지 않거나, 승진시켜서는 안 될 사람을 승진시키거나, 높이 예우해야 할 사람을 예우하지 않거나, 예우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예우한다면, 이는 실용을 버리고 허위를 따르는 것이다. 이는 자기의 사사로운 뜻으로 한 것이 아니라면 틀림없이 다른 사람의 사사로운 뜻을 이루어 주려고 한 것이니, 어찌 많은 백성을 권장하고, 후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의 거듭되던 막무가내 실정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 믿으면서도 노상 노파심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역대 정권들이 개고기를 양고기로 포장하여 그나마 龍頭蛇尾(용두사미)로 끝난 수많은 사례를 봐왔기 때문이다.
제발 별난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면서 자화자찬의 망상으로 막대한 예산을 들여 고향에 자기의 기념관을 짓는다거나, 대대적인 귀향잔치를 벌리는 따위 속임수가 없었으면 싶은 것이다. 그리고 특히 유념할 일은 매사에 말을 아끼라구요.
그 옛날, 궁중에 남곽이라는 이름의 퉁소를 부른 익사가 있었다. 당연히 퉁소에선 명인이자 일인자여야 하는 그 자리에 그는 전혀 소질이 없으면서 권세가 줄을 대어 그 자리를 얻고선 밖에 나와서는 땡땡거리고 다녔다.
당시의 임금이 오늘날의 교향악을 즐겨 퉁소 부는 악사도 여럿이라 남곽은 퉁소에 입을 대고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퉁소 구멍에 얹은 손가락을 적당히 놀리면 국록을 축내는데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마음의 임금은 개인기에 비중을 두었으니 남곽의 불안은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 어느 화창한 봄날, 궁중에서 크게 봄놀이를 펼친 막바지에 임금이 얼근한 기분에 악사들의 개인기를 주문했다.
악사들은 저마다 물실호기라 임금께 발탁되길 바라면서 실력껏 기량을 뽑냈다.
이윽고 퉁소의 차례가 되어 남곽은 중간쯤에 끼어 섰다. 앞선 악사들이 연주하는 기량에 모두들 황홀하게 도취되어 눈을 지긋이 감고 감상하는 틈에 남곽은 슬금슬금 순서를 바꿔가다가 더는 버틸 수 없는 결정적 순간에 줄행랑을 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는 평생을 숨어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그 남곽은 아직도 수배해제 되지 않고 있단다.
이명박 정부에 남곽이 같은 위인이 혹시라도 섞인다면 ‘짐은 질 수 없는 자에도 온다’가 될 것이니 크게 경계할 일이다.
자유당때 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끼니까 옆에 섰던 고관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아첨해 세간에 웃음거리가 되었던 기억이 영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해서 자리보전하려거든 아예 태어나지 말았어야 옳았을 것을.
이명박 정부는 필히 한 村婦(촌부)가 남긴 명언 ‘짐은 질 수 있는 사람한테 보람과 함께 온다’는 사실을 임기중 내내 명심 또 명심할지어다.
/시인
이기진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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