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쪽방촌 사람들에게는 아니다. 그들이 가을이라도 왔으면 하는 것은 여름 나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쪽방촌 할아버지의 여름은 올해도 힘겨운 것이었다. 마르고 병약한 몸으로 이겨내기에는 너무 힘든 폭염과 열대야가 여름 내내 계속됐기 때문이다.
“죽을 지경이지 뭐.”
할아버지의 독백처럼 쪽방의 여름밤은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다. 어디에도 더위를 피해 있을 만 한 곳은 없다. 사람 하나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에도, 창문 없는 쪽방 안에도 다만 찜통더위가 있을 뿐이다. 그나마 잠을 청하기 위해 눅눅한 쪽방에 누워 보지만 하루 종일 달아오른 슬레이트 지붕의 식지 않은 열기에 숨 막히는 밤은 길기만 할 뿐이다. 낡은 선풍기 한 대가 돌고 있지만 그 역시 더운 바람만 뿜어내니 야속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가끔 연락 오는 딸이 하나 있긴 하지만 근간에는 그나마 연락도 끊겼다. 그렇다고 먼저 연락할 수도 없다.
“해 준 게 없는데…”
그래도 그립고 그래도 서운하다. 하고 싶은 말이 어찌 없겠나. 쫓아 갈 수도 없고 기다려 주지도 않고 더 멀리 도망쳐가기만 하는 세상 곁에서 “그래도 피해주는 인생은 되지 말자!”
마지막 소원은 그것뿐이라며 가을이라도 오기를 기다리는 할아버지의 마을 쪽방촌.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 할아버지를 닮았다. 그늘지고 배고프고 허망하고 절망 앞에 목이 멘다.
쪽방은 문자 그대로 ‘쪼개진 물건의 한 부분’으로서의 방이다. 보건복지부 정의로는 ‘3.3평방미터 규모에 화장실과 부엌이 없는 집’이다. 방이라 할 수도 없고 집이라 할 수는 더욱 없는 쪼개진 물건이다. 간신히 몸을 뉘울 수 있는 크기의 방에는 방보다도 더 잘게 쪼개진 삶의 그림자가 여름장마와 폭염에 마냥 삶아지고 있다. 몇 년 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이런 주거 빈곤층이 68만3025가구에 161만7062명이라고 했다.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비닐집, 움막, 동굴 등의 거주 가구까지 하면 국내의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는 200만 가구도 더 될 것이다. 더는 내 몰릴 곳도 없는 막장 같은 삶의 현장, 이런 마을로 오는 가을은 그래서 특별하다.
“바람 있습니까?”
바람조차 길을 잃는다는 쪽방촌의 가을은 길을 찾는 바람과 함께 오는 반가운 손님이다.
“햇빛이 있습니까?”
햇빛을 보는 방에서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는 쪽방촌의 가을은 그래서 더욱 고마운 손님이다.
그 손님으로 하여 쪽방촌 사람들은 잠시나마 눅눅해진 옷가지들을 말리기도 하고 모기 없는 시원한 밤의 단잠도 청해 볼 것이다. 추석이라고 해야 기다릴 사람도 없는 그들에게 쪽방 깊숙이까지 찾아드는 한가위 달빛은 또 얼마나 반가운 손님인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귀뚜라미소리에 떠오르는 추억들을 어루만지다 아무도 모르게 떠나고 싶은 세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곧 겨울이 오면 쪽방은 추위라는 이름아래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될 테니까.
추석을 앞두고 우리는 한번쯤 쪽방촌의 가을이고 싶은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백화점은 웃고 재래시장은 울고’라는 말은 추석을 앞둔 2008년 우리 주변의 표정이다. 백화점은 100만 원대의 건강보조식품같은 고가 선물세트를 찾는 손님들로 종일 북적대고 있고, 재래시장은 얼어붙어 대목이라는 말이 낯설기만 하다는 것이다. 단돈 2, 3만원이 없어 전기가 끊기고 수돗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가구 수가 12,000가구일 때 부유층 12만 명이 해외로 골프를 치러 갔고 일부는 호화쇼핑을 즐기고 왔다 얘기가 있었다. 얼마나 정확한 숫자인지는 모르지만 다음과 같은 ‘대한민국의 가슴 아픈 숫자들’도 있다.
점심 굶는 학생 20만 명, 수업료 못내는 중고생 36,000명 ,가출 청소년 10만 명 ,결식아동 117만 명 ,교도소 수감자 10만 명, 자살자 한 해 15,000명 (하루 평균 41명, 대부분 생활고 비관),내버리는 아이 12,000명 (하루 평균 33명), 최저생계비 이하의 극빈층 600만 명, 티케다방 매춘 미성년자 33,000명, 고아수출(해외입양) 2,400명 (하루 평균 7명),미국-캐나다 원정출산 25,000명(누계), 성형수술 세계 2위 , 낙태수술 세계 1위 ,자살증가율 OECD(30개국) 1위.
그러고 보면 온통 쪽방 천지 아닌가. 외면하고 살 때 보이지 않던 것들, 이 가을 한가위 밝은 달빛을 빌려서라도 애정어린 마음으로 봐 둬야 할 것 같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마음의 그림이라도 한번 그려 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쪽방촌의 가을은 훨씬 가가운 곳에서 우리 모두의 가을로 깊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사랑 교회 목사
최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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