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제 지표에 빨간 불이 켜지면서 일자리는 줄어들고, 소비와 투자마저 위축되어 엄동설한을 눈앞에 두고 국민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런 경제 상황을 걱정하면서 “내년 봄이 경제가 가장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므로 국민적인 협조를 바란다”며 국민들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러나 근대(近代)에 들어서 정말 고통스러웠고 생(生)과 사(死)를 넘나들면서 어렵게 살았던 때는 1950년 겨울이었다.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6.25전쟁은 아무 대비도 없던 국방군을 궤멸시키고 불과 며칠사이에 낙동강 전선까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밀고 내려갔으나 UN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역전되면서 압록강까지 북진했다. 또다시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를 거듭해서 1951년 1월4일에는 수도 서울을 또 다시 북한군에게 내어주는 피 어린 골육상잔(骨肉相殘)이 전개되었다.
이런 와중에는 사회기반 시설과 생산시설은 모두 파괴되었고, 수많은 생명들이 죽어갔다. 1.4 후퇴 때에는 되도록 많은 시민들이 피난하도록 정부에서 독려했다. 하루를 자고 나면 아래위로 빈집들이 늘어났다. 피난길을 떠난 것이었다.
12월24일 아침 우리가족도 침구류와 옷가지, 솥단지, 비상식량 등을 꾸려 메고 집을 나섰다. 매서운 칼바람이 볼을 에이는데 길을 메이도록 열을 서서 걷는 피난민들 틈에 끼어 꽁꽁 얼어붙은 한강을 걸어서 건넜다.
그날, 안양까지 걸어가니 해가 저물어 주인이 피난을 떠나고 없는 빈 집을 골라 한 방에서 12~3명씩 앉아서 밤을 새웠다. 그 다음날 수원에서 자고, 아침에 기차 정거장으로 나와 보니 연결된 화물차 지붕위에 피난민들이 가득 앉았는데, 다리가 아파 걷기 힘든 우리 가족은 피난민들 틈을 비집고 화차 지붕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기차는 그날 저녁에야 수원역을 출발했다.
밤바람을 막기 위해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때의 기관차는 석탄을 때서 움직이는 증기 기관차였기 때문에 터널을 통과할 때는 연기의 끄으림으로 숨이 막히는 것 같았고, 터널 몇 개를 통과한 다음에는 사람이고, 이불이고 까맣게 염색이 되어 버렸다.
다음날 아침, 어느 시골 역사의 피양선에 대어 놓은 화차는 하루 종일 움직이지를 않았다. 주 선로(主線路)로 운행되는 군수(軍需)열차에 노선(路線)을 제공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화차를 내려가 인근에 있는 점포나 노점상들을 찾아 다니며 가족을 위해 따끈한 국물이나 먹을 것을 사다가 화차 지붕에서 가족들이 내려주는 끈에 매달아 올려 주곤 했다.
그럴 때 마다 예고 없이 출발하는 기차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미처 돌아오기 전에 떠나게 되면 그대로 이산가족이 되는 수밖에 없어, 마음 조이는 순간이 계속 되었다. 그렇게 하기를 1주일 만에 기차는 대구역에 도착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 목적지도 없는 우리 가족은 화차 지붕위의 생활을 더 이상 감내할 수가 없어 대구역에서 기차를 내렸다.
막상 대구역에서 하차 했으나 갈곳이 없었다. 아버지는 우리를 대구역사 앞 길가에 기다리게 해놓고 방을 구해 보겠다면서 시내곳곳을 헤매이다가 해질무렵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날 아버지가 얻어 놓은 곳으로 대구시 변두리에 있는 주택 한쪽에 방을 드리려다 중지한 헛간 같은 곳이었다. 그날 저녁 그곳에서 밤을 새우고, 다음날 구둘을 놓고 벽을 쌓아 방을 만들었다. 도배는 할 틈이 없어 바닥에 가마니를 깔았다. 그날 저녁 방에 불을 지피고 가족들의 보금자리로 삼고 나니 대궐이 부럽지 않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고비를 겪었고, 그 고비마다 어떻게 살아 왔나 싶다. 우선 일제(日帝)강점기, 해방, 그리고 신탁통치 찬반을 둘러싼 좌, 우파간의 대립, 대한민국 정부수립, 6.25전쟁, 4.19혁명, 5.16혁명, 군사통치, 민정 이양, IMF, 그리고 수많은 석유파동과 원자재 파동 등을 꼽을 수 있겠다.
그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때는 1950년 겨울이라고 생각된다. 그때의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나 하나가 아니고 우리 민족 모두가 겪어야 했던 수난기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시켜 온 것이다. 우리는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면서 터득한 철학이 있으니 ‘어려움을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어려움이 온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자. 오히려 ‘그 어려움을 기회로 삼자’고 외치고 싶다.
이재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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