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성식 변호사

예를 들어 갑이 을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다면, 갑은 소송과정에서 을의 불법행위, 손해발생, 인과관계, 손해액 등을 입증해야 하고 이를 위해 이와 관련된 증거 등을 제출해야만 하고(변론주의라 한다), 갑이 제출한 소송자료를 통한 사실인정에 있어서 법원은 원칙적으로 제약을 받지 않는다(자유심증주의라 한다).

그런데 만약 상대방 또는 제3자가 중요한 문서를 소지하고 있다면, 소송당사자는 소송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경우 소송당사자는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이런 경우 소송당사자는 법원에 ‘문서제출명령신청’을 할 수 있고, 법원은 문서제출명령신청이 정당할 경우 문서소지자에게 문서를 제출할 것을 명령할 수 있다. 문서소지자가 제3자인 경우, 법원은 과태료 부과를 통해 문서제출을 간접적으로 강제할 수는 있으나, 문서소지자가 소송 상대방이라면, 이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즉, 원고 신청의 문서제출명령이 인용되어도, 문서 소지자가 피고라면, 피고의 문서제출을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소송자료의 제출 책임은 전적으로 소송당사자에게 있다는 변론주의 원칙에 기인한 것이다. 다만 우리 민사소송법은 입증방해로 볼 수 있는 행위에 대해 약간의 제재를 가하고 있다.

즉, 우리 민사소송법은 당사자가 문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법원은 문서의 기재에 대한 상대방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민사소송법 제349조 참조).

여기서 ‘상대방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우리 대법원은 상대방의 그 문서에 관한 주장 즉, 문서의 성질, 내용, 성립의 진정 등에 관한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이지 그 문서에 의하여 입증하고자 하는 상대방의 주장사실까지 반드시 증명되었다고 인정하여야 한다는 취지가 아니며, 주장사실의 인정여부는 법원의 자유심증에 의한다(대법원 1993. 6. 25. 선고 93다15991 판결 참조)'라며 그 한계를 밝힌 바 있다.

예를 들어, A와 B 소송에서 '갑이 A로부터 금 1,000만원을 차용한 사실'이 중요한 쟁점이 되고, 갑이 A에게 작성해 준 차용증을 A가 소지하고 있을 경우, B는 ‘갑이 A로부터 돈을 차용한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할 수 있는데, A가 이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법원은 B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갑 명의의 차용증 작성 사실’만을 인정할 수 있을 뿐, B가 입증하려고 하는 ‘갑이 A로부터 돈을 차용한 사실’ 자체를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자유심증주의 원칙상 불가피한 부분이지만, 적어도 차용증 작성 사실은 인정되는 것이므로, B이 다른 증거를 통해 갑의 차용사실을 입증할 확률은 높다고도 볼 수 있다(다만 법원은 자유심증주의 원칙상 갑의 차용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문성식 변호사  moon2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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