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아침인사는 ‘굿모닝’ 대신 ‘북모닝(Book morning)’이다. 대구시내 전 학교에서 아침마다 책 읽기를 시작한지 5년째. 아침 등교 하자마자 학생들은 모두 책을 꺼내 읽는다. 짧으면 10분 길면 수업이 시작되는 9시까지 30분간 학교에는 고요한 집중의 시간이 찾아온다. 이 시간 동안은 교사도 예외가 아니다. 학생과 함께 책을 읽으며 차분히 하루를 준비한다.

△ 대구 동일초등학교 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책을 읽고 있다. 아침독서 10분 운동은 '매일, 모두 다 같이, 좋아하는 책을, 읽기'만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만화책 부터 동화책 까지 다양한 책을 읽고 있다.

이 같은 대구의 10분 독서운동은 우리나라 교육계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특히 교육청이 주도한 책읽기 운동이 5년 만에 글쓰기 교육, 1인 1책쓰기,  스토리텔링형 교과목 연구까지 성과물들을 쏟아내자 교육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공교육에서 책 읽는 시간을 마련해 책 읽는 인간으로 만들자는 아침 독서 10분운동. 안산시 교육지원청도 올해 3월부터 각 학교마다 아침독서 10분 운동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부족한 예산과 아침독서10분 운동에 대해 부족한 이해로 단순히 ‘책 읽어라’하는 지시형 운동으로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대구의 아침독서 10분 운동 사례를 통해 이 운동의 핵심 키워드는 무엇인지 짚어 보았다.

■ 매일 꾸준히 읽어라

△ 대구교육청 아침독서 10분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한원경 장학관.

더구나 2004년 대구시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독서 실태조사에서 그동안 실시하던 사서지원 사업이 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독서교육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매일 다같이 좋아하는 책을 읽기만 한다'는 아침독서 10분 운동은 책 읽은 후 독서감상문을 적게 하는 우리나라 독서교육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한 장학관은 '대구에서 새로운 독서교육의 모델을 만들 수 있다'며 교육장을 설득해 2005년부터 아침독서10분운동을 시작했다.

대구교육청은 먼저 각 학교 교장선생님들에게 아침독서 10분 운동을 소개한 책을 선물했다. 아침시간은 학교장의 재량권이기 때문에 학교장이 아침독서운동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면 충분히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처음엔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몇몇 학교장이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 책을 읽는 것보다 영어공부나 한자공부가 더 필요하다”며 반대에 나섰기 때문이다. 첫해엔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90%의 학교가 아침 독서운동에 참가했다.

그러나 첫 해 놀라운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책 읽기로 하루를 시작하면 수업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교사들이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초등학교와 달리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던 고등학교도 대학입학시험에서 논술과 심층면접이 강화되면서 적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해 삽시간에 대구시내 전 학교에 아침독서 10분운동이 들불처럼 번져갔다.

■ 모두 다 같이 읽어라

대구교육청이 형식적으로 “아침에 아이들에게 10분 동안 책을 읽게 하십시오”라는 지시사항만을 전달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침독서 10분 운동을 주도한 한원경 장학관는 이 운동의 핵심이 “모두 다 같이 읽는 것”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장학관은 “아이들이 스스로 습관을 익히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모범을 보여야 하고 선생님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교육청 직원들이 먼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전 직원 3S 운동(Same people, Same book, Same mind Movement)이다. 3S 운동은 2005년도부터 교육청 직원들이 일 년간 6권의 책을 정해 같이 읽고 저자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 등 책 읽기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또한 이 운동은 아침독서 10분 운동이 해마다 발전하고 진화하는데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3S 운동은 각 학교 교직원 운동으로 퍼져 나가 각 학교 교직원들도 같은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독서토론 활동을 진행했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끼리 독서 퀴즈대회를 열며 즐겁게 책 읽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노출 시킨다. 교직원들이 책 읽기를 즐기는 것 자체가 교육이 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아침 독서시간엔 모든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는 것이 자연스러운 광경이 되었다.

한원경 장학관은 “아침독서 4개 원칙 중에서 가장 힘들면서도 중요한 원칙이 다 같이 읽는 것이다. 다 같이 책을 읽으면 그 고요함이 주는 에너지의 힘이 몇 곱절은 커진다. 그 힘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달라진 수업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 좋아하는 책을 읽기만 한다

한원경 장학관은 책 읽기 교육에서 특히 교육자가 경계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교육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게 만들고 책 읽은 후 독서 감상문을 적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두 가지 행동은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책 읽기의 즐거움을 빼앗아가는 어른의 욕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엔 만화책만을 좋아하던 학생들도 문자와 익숙해지면 동화책을 읽기 때문에 충분히 읽을 수 있게 배려하고 기다려 주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읽는 내내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읽은 책 제목을 기록하는 것 이 외에 모든 독서감상문 활동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장학관은 “책을 읽고 독서 감상문을 쓰기 힘든 책이 많아요. 항상 독서 감상문을 써야 한다면 아이들의 독서 영역이 한정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런 독서 감상문 활동이 독서습관을 기르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구교육청은 독서 감상문 활동 대신 책 읽기 운동 3년째 되던 2007년 ‘삶 쓰기 100자 운동’을 시작했다. 책을 읽고 책 내용을 적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일어났던 일을 100자 정도로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지도하기 위해 첫해 교원 1만 명에 대해 교원 글쓰기 직무 연수를 진행하고 학생들에게는 삶 쓰기 100자 워크시트를 제작해 배포했다. 이 워크시트에는 그 나이 또래의 학생들이 적은 생활글과 하루 하루 자신의 생각을 담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삶쓰기 100자 운동은 그동안 우리 교육에서 등한시 되었던 글쓰기 교육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삶쓰기 100자 운동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글로 정리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글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얻은 학생들의 자신의 재능과 생각을 글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 책쓰기 교육으로 10만 저자 탄생 예고

△ 지난 2년간 대구 학생저자들이 쓴 책이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 풀어낸 학생들의 시각이 신선할 뿐만 아니라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책쓰기란 자신만의 주제를 선정해 A4용지 30장 정도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프로젝트 완성형 교육이다. 자신의 적성과 흥미 진로 등과 연관된 주제를 선정해 해결 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주로 자신의 꿈을 찾고 그 꿈을 타인과 공유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책 쓰기 교육은 학교별 동아리 활동과 문예창작 영재 교육원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대구시 교육청은 매년 초 중 고등학교 100개 동아리를 선정해 책 쓰기를 지원하고 429개 학교에서도 책 쓰기 동아리를 운영하며 지원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년 동안 학생들이 만든 책이 12권이다. 각 권마다 학생 10여명이 참가했으니 2년 만에 학생저자 100여명이 탄생한 셈이다.

책의 주제도 다양하다. 초등학생들의 중국 기행문인 ‘한국 초딩의 중국 여행’, 여고생 13명의 꿈을 그린 ‘13+1’, 과학 이야기책 ‘동생에게 들려주는 재미있는 과학이야기’ 등 제각각이다. 책을 펼쳐보며 더 다양한 색깔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자신의 꿈을 ‘자살 전문가’로 표현한 여고생 이야기에서 청소년들의 시각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전율이 느껴진다.

한 장학관은 “선진국에는 전문 작가들의 글보다 생활인의 책이 많이 만들어지고 많은 사랑을 받는다. 이런 아이들의 생활글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현실이자 역사이며 동 시대 인간들에게 가장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덧붙혔다. 대구 교육청이 책쓰기 운동으로 10만 저자를 양성하겠다는 목표가 터무니 없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구교육청은 현재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교과과정을 개발하고 있다. 통합교과논술 교수법을 만들어 사교육과 본질적인 차별화를 이뤄낸다는 계획이다.

한 장학관은 "대구교육청이 책읽기 운동을 발전시켜 공교육 강화라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독서교육에 대한 통합적 시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우리 독서교육은 21세기가 요구하는 상상력과 창의성을 갖춘 인재를 키우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고 말했다.

  단순한 책 읽기 운동 아닌 통합적 시각 필요

10분 책 읽기 운동을 발전시켜 공교육 강화라는 대안을 만들어 가고 있는 대구시 교육청. 물론 여기에 투자되는 예산도 적지 않다.

안산 교육 지원청이 책 읽기 운동을 위해 사용하는 예산은 1400만원인데 비해 대구시 교육청은 17억원을 사용한다. 수치로만 따져도 100배가 넘는 금액이다. 대부분 교사 연수와 연구자료 개발비용, 동아리 지원금 등이다.

이에 비해 안산교육지원청은 지난 9월 8일 학교 도서관 담당 교사들에 대한 연수를 처음으로 진행했다. 독서교육 활성화를 위해 책 읽는 사회 문화재단 여희숙 이사가 강연했다. 그러나 한 차례 강연으로 책 읽는 학교 분위기를 만들기에는 아직까지 역부족으로 보인다.

독서교육 활성화 연수가 끝난 뒤 아침독서 운동이 가장 자리가 잘 잡혔다는 상록구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본 결과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 교사는 단 한명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부분 컴퓨터 모니터를 보거나 숙제검사 혹은 수업준비를 하며 아침 독서를 지도하고 있었다. 10분 아침독서 시간 이후에는 영어방송을 시청 한 후 1교시 수업을 진행해 책 읽기 후의 차분한 분위기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대구시내 학교와 차이가 두드러 졌다.

독서교육 활성화 연수에 참가한 교사는 "연수를 통해 학교 독서지도와 아침독서 운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실제로 학교로 돌아와 교사들과 공감할 시간이 없었다. 또 교사들에게 강연 내용을 전하는 것보다 직접 연수를 받아 교실에서 실현될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 일 것”이라고 말했다.

안산의 아침독서 10분운동이 단순한 책 읽기 교육이 아니라 교육 전반에 걸친 변화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원칙을 재점검하고 교육전반에 관한 통합적 접근이 절실해 보인다.

하혜경 기자  sekami03@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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