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근원 동화작가 (안산화랑초등학교 교장)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 절기가 지났다. 입동은 천지만물이 양에서 음으로 변하는 시기로 동양에서는 입동 후 3개월을 겨울로 보고 있다.

경인년의 가을도 하루가 다르게 모습을 지우고 있다. 잎 지우는 나무 아래를 지나면, 나무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봄엔 새순을 돋게 하여 우리들에게 생명이라는 희망과 기쁨을 주고, 여름엔 땀방울 식혀주는 그늘을 만들어주고, 겨울엔 모든 것 다 내어주고 온몸으로 바람을 맞는 나무들…. 생명의 경외함마저 느끼게 하는 나무들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보이는 곳마다 늦가을의 느낌표들이 가슴에 차곡차곡 쌓이곤 한다. 화랑유원지와 호수공원, 수암봉과 광덕산도 온통 늦가을 빛이다. 화랑유원지와 호수공원을 걷는 사람들을 보며 느림의 미학을 떠올린다.

사계절 중에서 우리들의 발걸음을 가장 느리게 만드는 계절이 가을이다. 흔들리는 억새와 갈대가 발걸음을 붙잡고, 저수지 수면에 물무늬를 만들며 지나는 바람도 우리들의 발걸음을 붙들고 있다. 마지막 남은 가을에 애처로울 만큼 형형색색 진한 꽃잎으로 발걸음을 붙잡기 바쁜 코스모스, 예쁜 낙엽을 주워 책갈피에 끼우는 그림엽서 같은 아이들의 모습도 발걸음을 붙들며 천천히 걷게 만든다.

수암봉과 광덕산의 낙엽 쌓인 오솔길을 오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도심의 가로수 길을 걸어도 마찬가지이다. 낙엽 쌓인 길을 걸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플라타너스 낙엽, 느티나무 낙엽, 벚나무 낙엽, 발끝에 밟히는 낙엽들의 사각거리는 소리가 제각기 다르다. 어쩌다 다른 낙엽들이 섞여있는 길을 걸을 때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마치 음악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발끝에서 사각거리는 낙엽들의 소리에서 나무들의 마음을 읽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제 할일 다하고 겨울을 맞는 나무들. 그래서 일까, 낙엽 쌓인 길을 걸으면 낙엽만큼이나 많은 상념 속에 빠져들곤 한다. 상념은 발걸음을 천천히 더 천천히 붙잡으며 느림의 미학까지 선물한다.

뒤돌아볼 겨를조차 없이 바쁘게 살아온 일상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도 낙엽이다. 낙엽은 지나온 세월을 반추하게 하고, 인생이란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낙엽은 인생의 무상함보다는 제 할일 다 마치고 흙으로 다시 돌아가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겸손의 미덕까지 낙엽은 우리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많은 지자제들이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낙엽거리 조성으로 시민들의 마음을 아름답게 해주고 있다. 제주도의 올레길과 지리산의 둘레길을 비롯해 지자제들마다 특색 있게 만든 낙엽거리 홍보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몇몇 낙엽거리들은 이미 관광 명소까지 되었을 정도이다.

안산도 지난 4월에 갈대와 시화호가 물결을 이룬‘은빛 올레길’을 탄생시켰다. 본오아파트 옆 놀이터에서 시작해 사동 승지골에 이르는 5.98km 구간으로 3시간이면 쉬엄쉬엄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딱딱한 아스팔트길을 떠나 흙이 주는 부드러운 느낌은 그 어느 것과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선물하는 길이다.

더불어‘은빛 올레길’외에 아름다운 낙엽거리도 조성했으면 한다. 그 낙엽거리에서 낙엽그림 그리기 대회를 비롯해 단풍 코팅 행사, 가족그림 콘테스트, 낙엽편지 쓰기 대회, 시화전과 시낭송 등의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했으면 한다. 음악회도 곁들인 낙엽거리에서 낙엽을 밟으며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삶의 무게도 느껴보며 느림의 미학을 체험케 하는 아름다운 거리가 우리 안산에도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몽가들도 낙엽에 관한 꿈을 아주 좋게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는 여유도 있어야겠다. 해몽가들에 의하면 낙엽은 사업의 성패와 재물을 상징한다고 한다. 산더미처럼 쌓인 낙엽을 본 꿈은 하고 있는 일이 잘 풀려 재물이 곳간에 많이 쌓인다고 한다. 또한 낙엽을 밟으며 걷는 꿈도 재물을 많이 얻는다고 한다.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해몽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마음 한켠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구실을 한다고 하겠다.

이제 낙엽은 우리들의 발길에 무수히 밟혀 사라지기도 하고, 바람에 실려 먼 길을 떠날 것이다. 이 가을이 가기 전, 낙엽 쌓인 산길에서 혹은 거리에서 기억 너머 사라졌던 시를 떠올려 음유시인처럼 읊조려보자. 학창시절 한 번쯤 낭송했을 프랑스 시인 구르몽의 낙엽.

‘… 전략/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류근원 동화작가(안산화랑초등학교 교장)  kwroo@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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