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성식 변호사

입증책임은 소송 당사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갑이 돈을 빌려가고도 갚지 않는 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면, 갑은 그 소송에서 을에게 돈을 빌려 준 사실을 입증해야만 한다.

위 예에서 갑은 을이 작성한 차용증이나 갑의 계좌에서 을의 계좌로 돈이 이체된 통장 계좌 등을 통해 대여 사실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만약 을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갑에게 손해가 발생했다면, 갑은 을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을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한 사실을 입증해야만 한다.

그런데 갑이 돈을 빌려 준 사실은 차용증과 같은 것으로 입증이 가능한 것에 반해, 을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까지 입증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 대법원은 ‘민사소송에서 사실의 입증은 추호의 의혹도 있어서는 아니 되는 자연과학적 증명은 아니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험칙에 비추어 모든 증거를 종합 검토해 어떠한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시인할 수 있는 고도의 개연성을 증명하는 것이고, 그 판정은 통상인이라면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일 것을 필요로 한다(대법원 2000. 2. 25. 선고 99다65097 판결)’라고 판단한 바 있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단은 다소 추상적인데, 구체적인 사안을 살펴보면, 예를 들어, ‘을의 직원들이 화재 발생 위험이 많은 곳에서 담배를 피웠고, 종전에는 그 곳에서 담배 재떨이로 사용하던 종이컵에 불이 붙은 일이 2번 정도 있다고 한다. 또 피고 직원 중 1인이 화재 발생 1시간 전에 담배를 피웠던 사실, 그 곳에는 불이 붙기 쉬운 종이류 등이 보관되어 있었던 점과 전기합성이나 제3자에 의한 방화가 화재의 원인일 가능성이 낮은 경우’라고 하더라도 ‘이 사건 화재가 담뱃불로 발생했을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되나 이러한 의심만으로는 이 사건 화재가 을의 직원들이 피운 담뱃불로 인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라고 판단된 바 있다.

즉 담뱃불로 발생했을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 정도로는 입증이 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입증책임을 부담하는 자는 소송에서 승소하기 위해서는 그 입증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고도의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입증책임을 다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의료소송에서 입증책임 전환이란 문제가 제기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고, 급발진 사고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쉽게 자동차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는 것도, 자동차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인지, 운전자의 과실인지를 현재 정확이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어렵게 생각되는 입증 문제도 과학이나 기술의 발달로 보다 좀 더 많이 가능해 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권리구제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문성식 변호사  moon2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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