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제연 논설위원

천안함 사건이 1년이 지났다. 27일에는 백령도에서 천안함 46용사의 위령탑 제막식이 눈물로 얼룩졌다. 위령탑에는 천안함 46용사들의 얼굴이 부조(浮彫)로 새겨졌다. 유족들은 저마다 부조에 새겨진 용사들의 얼굴을 실제의 얼굴 인냥 구석구석 정성스레 어루만지며 오열하는 모습에 가슴이 메인다.

위령탑에는 46용사에 대한 묘비명이 새겨졌고 그 내용은 “서해 바다를 지키다 장렬하게 전사한 천안함 46용사가 있었다. 이제 그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려 여기 위령탑을 세우나니 비록 육신은 죽었다 하나 그 영혼, 역사로 다시 부활하고 국민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자유대한의 수호신이 되리라”며 희생 장병을 추모했다.

또 “46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히려 ‘전우가 목숨 바쳐 지킨 바다, 우리가 사수한다’는 해군 장병들의 해양수호 의지는 자손만대 계승될 것이다… 꽃피지 못한 채 산화한 그대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희생정신은 이제 우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는 글귀도 새겼다.

한주호 준위 동상의 묘비에는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친 살신성인의 영웅 그는 진정 해군 특수부대원(UDT/SEAL)의 전설이며 군인의 영원한 표상이라 …중략… 그대는 우리 역사에 하나의 전설로 남아 영원히 영원히 빛나리로다.”라는 가슴 뭉클한 비명이 새겨졌다.

최근 인생을 성찰하는 수단으로 자신의 묘비명을 써보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묘비명은 세상을 떠난 누군가가 남겨두고 가는 마지막 흔적인 동시 망자가 세상에 던지는 최후의 메시지다. 그러한 메시지를 통하여 죽어서도 태우는 정신의 불꽃과도 같은 것 일 것이다.

우리가 묘비명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 인생의 아름다운 매듭에 대한 욕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간결한 한마디로 이 세상에 마지막 훌륭한 외침을 남긴 묘비명들을 뒤적여 본다.

앤드류 카네기의 묘비명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들을 주위에 모으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 여기에 잠들다.”이다. 리더는 모든 점에서 부하보다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더 요구되는 것은 부하를 장악하는 수완과 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비명이다.

걸레스님이라는 화가 중광 스님은 “괜히 왔다 간다.”는 묘비명을 남겼다. 실컷 여한 없이 살았다고 생각한 그의 파격적인 삶조차 만족스럽지 못한 게 인생이라는 것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중광의 한마디는 어떤 장문의 연설보다 긴 여운을 느끼게 한다.

얼마 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도 시편에 나온 한 구절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는 묘비명을 통해 소임을 다한 종교인의, 거릴 것 없이 홀가분한 생사관과 무소유의 맛을 보여주었다.

개그우먼 김미화씨는 자신의 묘비명을 “웃기고 자빠졌네.”로 정했다고 한다. 그의 천부적인 개그우먼의 삶과 직업의식을 “웃기고 자빠졌네.”라는 말을 통하여 비상식적인 삶을 선택하는 오늘날의 사회상에 대하여 잘 살라고 충고 하는 것 같아 뜨끔하다.

소설가 공지영의 미리 써둔 묘비명은 “나, 열렬하게 사랑했고, 열렬하게 상처받았고, 열렬하게 좌절했고, 열렬하게 슬퍼했으나 모든 것을 열렬한 삶으로 받아들였다.”이다.

월드비젼 긴급구호팀장이자 여행가인 한비야씨가 미리 써둔 묘비명은 “몽땅 다 쓰고 가다.”이다. 어떤 편견에도 메이지 않고 매순간 인생을 남김없이, 미련 없이, 충실하게 살았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 인 것 같다.

알버트 슈바이처의 묘비명은 “만약 식인종이 나를 잡으면 나는 그들이 다음과 같이 말해주길 바란다. 우리는 슈바이처 박사를 먹었어. 그는 끝까지 맛이 좋았어. 그리고 그의 끝도 나쁘지 않았어.”이다. 직접 행동으로 실천하는 삶을 보여준 그의 삶을 잘 알기에 자신의 죽음이 아프리카 흑인들의 살이 될 수 있다면 자신의 몸까지도 바치겠다는 그의 이러한 마음을 우리는 허풍이 아니라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묘비명의 사전적 의미는 “죽은 사람에 대한 경력이나 그 일생을 상징하는 말 따위를 새긴다.”이다. 우리가 세상 삶을 마감할 때 위와 같은 훌륭한 묘비명을 남길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굳이 묘비명을 남겨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수 도 있을 것이나 스스로 묘비명을 지어보는 것도 망측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단 한번뿐인 귀한 삶 이기에 묘비명을 써봄으로 인해 남은 삶의 지침이 될 수 있고 정신없이 빠르게 휩쓸려가는 세속의 흐름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의 묘비명에는 뭐라고 쓸까? 각자의 묘비명을 하나씩 써 보는 건 어떨까?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을 묘비명을 미리 써 놓고 평생 실천하다 보면 좀 더 알찬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김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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