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규채 논설위원

서양 사람들의 가정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다. 부부간에도 자아의식이 너무 강해서 자기 영역이 침범당하면 거침없이 갈라서는 것이 가장 큰 병폐이고, 부모들이 자식의 정서나 심리적 갈등은 고려하지 않은 채 툭하면 가정의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가는 것이 제일 안타까운 문제이다.

그리고 상업주의에 물들어 부부간의 사랑이나 정, 의리, 신뢰감 같은 정신적인 요소 보다는 상대편이 얼마나 늘씬하고 예쁘냐, 얼마나 매력이 있고 능력이 있느냐 하는 효능 가치로 따지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 특히 선진국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다 이렇게 심각한 가정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철저하고 단단한 가정 중심적인 생활상은 우리가 배우고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가령 우리 사회의 보통 부부들은 함께 살면서도 평생 동안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는 경우가 드물다.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 이전에 서로가 서로를 믿고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살고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믿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부인이 머리를 새로 했다던지 옷을 새로 사 입어도 별로 관심이 없다. 답답해진 부인이 “여보, 이번에 새로 한 이 머리 어때요. 그리고 이 옷은요?” 이렇게 물어보면 마지못해 “거 뭐, 괜찮은것 같은데…”하는 식의 미지근한 표현을 해준다. 심한 경우에는 “그 머리가 그 머리지… 거기다가 뭐하러 돈을 들여, 새 옷 입어봤자 그 모습이 그 모습인데 당신 왜 자꾸 옷을 사는거야”라는 핀잔을 주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너무 믿는다는 것을 강조한 나머지 부부간에 거의 모욕에 가까운 이런 말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아마 미국이나 유럽처럼 남녀평등, 부부평등 사상이 팽배한 선진 외국에서 이런 반응을 보였다가는 당장에 이혼감일 것이다.

일요일만 해도 그렇다.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주말과 일요일은 지독하리만큼 철저하게 가정 중심으로 보낸다고 한다.

주말에 남의 집을 예고 없이 방문하는 일은 정말 말도 안되는 실례 중의 실례이고, 더구나 일요일 오전에 남의 집에 특별한 목적이나 약속 없이 전화를 하는 것도 실례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네들은 어떤가, 가장들은 주로 주말에 술 약속을 하고, 일요일 아침부터 친구집에 전화를 걸어 “이봐, 오늘 낚시를 갈까, 등산을 갈까?” 아니면 일요일 아침부터 소파에 길게 누워 하루종일 꼼짝도 않고 텔레비전만 보는 가장들도 허다하다.

언젠가 여론조사를 보니까, 하루중에 아내와 남편이 정말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고작해야 10분도 채 안된다고 한다.

겨우 한다는 대화가 “식사 하세요” “잘 다녀오세요” “나 다녀올게” 아이들은…“뭐” 이 정도라는 것이다.

우리 가정의 일요일 문화를 보다 가정적으로, 이왕이면 부부 사이의 폭 넓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집 가훈’은 ‘믿음의 아버지’ ‘사랑의 어머니’ ‘성실한 아들 딸’.

박규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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