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 동화작가 (안산화랑초등학교 교장)

어깨가 절로 올라간다. 주몽이 떠오르고, 광개토대왕, 장수왕, 을지문덕…, 우리 역사상의 어느 나라보다 수많은 영웅들이 떠오른다. 애절한 사랑 속의 유리왕도 떠오른다.

무용총 수렵도를 바라보라. 활달하고 힘찬 고구려인의 기상이 성난 파도처럼 배어나오고 있다. 활시위를 힘껏 당기며 사슴과 호랑이를 쫓고 있는 고구려인의 기개를 보노라면 절로 힘이 솟구쳐 오른다.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사냥총에만 의지하는 현대인들의 사냥법과 비교하면 팔뚝에 핏줄이 산맥처럼 일어난다. 수렵도는 타임머신을 타고 고구려로 날아가게 만드는 묘한 매력까지 주고 있다.

고구려의 압권은 누가 뭐라 해도 광개토대왕이다. 지난 해 7월 29일, 중국 지안시 마셴향 마셴촌에서 새 고구려비가 발견되어 고고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고구려를 더 고구려답게 만들어줄 ‘제2 광개토대왕비’

제2 광개토대왕비는 광개토대왕비, 충주 고구려비에 이어 세 번째 발견된 고구려비이다.

한 고고학자는 “중국 서체와는 확연히 다른 호방하면서도 질박한 광개토대왕비의 서체와 유사해 고구려가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서체를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도 독자성을 유지해 갔다는 사실을 이 고구려비가 뒷받침해준다”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중국 정부는 학계 전문가와 문화재 담당 관리 등으로 구성된 팀들이 비밀리에 연구·조사 중이라고 한다. 조사 팀들을 정확하게 말하면 동북공정의 주역들이다. 현재 지안시 박물관은 외부 입장객을 일절 받지 않고 있다.

그 이유가 너무 황당해 헛웃음이 나올 정도이다. 내부 수리 중으로 5월쯤에나 일반인의 관람이 가능하다고 한다. 웃겨도 한참 웃기게 만든다.

뻔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는 얄팍한 수작이다. 동북공정의 한 수단으로 제2 광개토대왕비를 이용하려는 게 뻔하다.

동북공정,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쪽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이다. 쉽게 얘길하면 중국의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역사 왜곡 프로젝트이다.

그들의 속셈이 뻔하다. ‘제2 광개토대왕비’를 비공개로 연구하면서, 동북공정의 도구로 사용하려고 할 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광개토대왕비는 중국 지안시에 있는 비석으로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사후 왕릉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왕이 죽은 지 2년째 되는 해, 아들인 장수왕이 세웠으며,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걸쳐 고구려의 영역 확장 과정과 그 사회상 및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세를 보여주는 내용들이 담겨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충주 고구려비는 국보 205호로 장수왕이 한강 진출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라는 게 정설이다. 커다란 자연석을 다듬어 세운 비석으로 광개토대왕비와 형태가 유사하다. 이 비에는 당시의 관직명과 지명이 다수 기록 되어 있으며 고구려, 백제, 신라의 관계를 보여주고 고구려의 영토 확장 과정과 신라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국내 유일 고구려 비석이다.

까까머리 유년 시절, 이 비석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미끄럼을 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비석을 홀대를 했으니…. 이 충주 고구려비는 1981년에 가서야 고구려비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이번에 발굴된 제2 광개토대왕비를 기점으로 우리 정부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주로 고조선과 고구려 그리고 발해의 역사를 대상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한 마디로 중국은 ‘고조선, 고구려, 발해가 고대 중국의 동북지방에 속한 지방정권인데, 한국과 북한의 학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왜곡하고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전제 아래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니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고구려와 발해는 한반도와 만주를 동시에 영토로 삼았던 자랑스러운 국가들이다. 우리 정부도 중국의 역사 왜곡에 체계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동북아역사재단을 발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아 아쉽기 그지없다.

이제 우리는 고구려사 연구를 더욱 체계적으로 집중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또한 국제사회에 고구려사를 비롯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작업도 체계적·지속적으로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교단에서는 우리의 국사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고구려를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한 뼘 정도 키가 커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도록 그런 교육을 해야 할 때이다. 끝.

류근원 동화작가 (안산화랑초등학교 교장)  kwroo54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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