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채 논설위원

외국사람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일본 사람 자신들도 그런 누드 사진 달력은 돈만 있으면 꼭 사서 건다고 한다. 요즘 우리나라의 격조 높은 월간지에도 때로는 누드화만 몇점씩 모아서 편집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연과 절묘하게 조화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야말로 하나의 조각품인지 자연속에 용해된 오묘한 조형물인지 분간하기 어려울만큼 훌륭한 작품이다.

프랑스 화가중에서 19세기 인상파 화가의 한 사람으로 누드화를 가장 많이 그린 사람은 우리도 잘 아는 오거스트 르느와르이다. 그는 정규 교육을 받지도 못하고 집이 가난해서 13살때부터 도자기 공장에 들어가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일을 했는데, 어릴때의 이 작업이 일생동안의 창작활동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르느와르는 초기에는 인상파 화가들과 어울려 피사르, 모네 세잔느와 함께 빛과 싸움을 하는 인상파 작업을 열심히 했지만, 19세기 말경에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서 그의 작품세계는 크게 변하게 되었다.

르느와르는 이탈리아 여행중에 살아움직이는듯한 대리석 조각품들을 볼 기회를 가졌고, 미켈란젤로식 나상들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전율에 가까운 감동을 받아 귀국후에는 본격적으로 여성들의 누드화를 그리고 그것을 프랑스 화풍으로 변모시켰다. 그가 그린 누드화들은 대부분 조금은 비만한 소녀상인데, 주황색과 황색, 초록이나 청색 따위의 엷은 색체로 독특한 관능미를 나타내고 있다.

비만한 귀족 부인들의 목욕하는 모습도 대단히 고혹적이지만, 그는 자기만의 독특한 예술적 표현 방법으로 춘화도의 함정을 비켜 정갈하고 향기로운 예술적 시각으로 그 여인들의 나상을 승화시켰다.

그래서 오늘날처럼 속된 사람들의 눈으로 쳐다봐도 르느와르의 그림은 아름답게 비쳐지지, 결코 플레이보이지나 펜트 하우스에 나오는 나상들과 같지 않은 것이다.

“너는 스스로 즐기려고 그림을 그리고 있구나” “물론 그렇습니다. 즐겁지 않다면 전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드화를 그리는 르느와르를 보고 그의 스승 글래르가 한마디 하자 르느와르가 솔직하게 대답한 말이다. 이런 르느와르의 예술적 공헌은 프랑스 미술의 우아한 전통을 20세기에 계승시켰다고 해서 1900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훈장까지 받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르느와르를 “꿩 먹고 알 먹고, 임도 보고, 뽕도 딴 신나는 화가”라고 부러워했다고 한다.

어쨌든 화가들에게는 누드화를 그리는 과정이 필요한 모양이다. 그래서 유명한 이중섭 화백도 미술학과 출신인 동문이자 부인이된 일본 여인을 고향 원산으로 데리고와 일제시대처럼 그 암울했던 시절에 남들이 볼세라 헛간에서 부인의 누드화를 그렸다.

과거 해방 후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미군 병사들도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등에 어린 자녀를 업고, 머리에 함지박을 이고, 늘어진 젖가슴을 온통 드러낸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들의 모습이 그들의 눈에는 제법 섹시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것이 점령지 미개 여인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간에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들의 가슴을 확대 촬영하고, 선정적인 대상으로 생각한 그들의 행위야말로 괘씸하기 짝이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생활 관습에 대한 문화적 도전이었다. 지금은 젊은 어머니들이 젖가슴을 내놓고 자녀들에게 젖을 주는 일이 거의 없지만, 우리가 자랄 때만 하더라도 어머니의 젖가슴은 고귀하고 신성한 사랑의 표상이었지, 야릇한 호기심이나 선정적인 대상이 아니었다.

바로 이 점을 미국인들은 간과했던 것이다.

해외 여행 자유화 문이 더욱 자유롭고 널찍하게 열려 있는 요즘 누구든지 돈 있고 시간만 있으면 얼마든지 세계 어디라도 여행을 할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관광객들이 대낮에 핫팬티를 입고 세종로를 걸었고, 지금도 이태원에서는 여름만 되면 아슬아슬한 차림을 한 외국인들이 많이 다니고 있다.

또 과거 우리나라에 왔던 일본인 관광객들은 고궁이나 경주를 찾기에 앞서 기생 파티를 그렇게 즐겼다. 그래서 우리들의 가슴에는 우리 문화와 관습을 아랑곳하지 않는 외국인들에 대한 저항의식과 거부감이 남아 있다.

따라서 우리가 밖에 나가면 남의 가슴에 그런 문화적인 저항감이 쌓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보다 개인 소득이 적은 동남아 국가나 중국의 연변 지역, 그리고 아프리카 어디쯤을 가서라도 절대로 오만한 한국인의 모습이나 어글리 코리안의 행동을 남겨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 우리가 슬프게도 많이 당해봤기 때문에!

박규채 논설위원  webmaster@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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