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소설가>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해 있는 우인을 병문안 하러 갔다. 사고 상황을 들려주는데 미군 차와 부딪쳤다고 했다. 한적한 곳에서 난 사고였는데 차에서 내려서 다가온 사람이 미군이어서 순간 ‘효선이 미선이’ 사고가 떠올라 순간 수만가지의 생각이 나더라고 했다. 게다가 한국말을 전혀 못하고 영어로 하는데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어 아픈 것보다 그게 더 무서웠는데, 굉장히 친절하게 처리 해 주어 감동이 갔다고 했다. 나도 초등학교 3학년 적일 때 미군 차에 부딪친 적이 있어 그 두려운 상황이 짐작이 갔다.
  그날은 오월의 햇살이 유난히 맑은 날이었다. 초등학교 뒷산에 미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어 학교 앞 도로로 미군차가 많이 다녔다. 그래봤자 그 시절 시골 신작로는 한 시간에 한 두 대가  다닐까 말까 했다. 그 시절에는 포장도 열악해서 학교 앞 몇 킬로만 포장이 되어 있어 차도 없는 한적한 학교 도로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아이들은 딱지치기, 고무줄 놀이를 먼지가 폴폴나는 운동장보다는 비오는 날에도 깔끔한 도로에서 노는 걸 즐겨했다.
 그 날도 우리는 학교 앞 도로에서 놀다가 집으로 가려고 일어섰다. 순간 달려오던  미군차를 보지  못하고 부딪친 것이다. 왼쪽 어깨가 심하게 아팠으나  일어서서 집으로 오려고 했다. 그러나 차에서 내린 미군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싣고는 출발을 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말도 한마디 못하고 미군을 보고  놀라고 무서워서 울었다. 내가 울면서 차에서 막무가내로 내리려 하자 미군은 안절부절 하면서 영어로 계속 소리를 질렀다.
 시내에 있는 미군부대 안의 병원에 도착했다. 흑인 의사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영어로 묻는데, 외국인을 그것도 흑인을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나는 무조건 우는 것으로 대신했다. 고집스럽게 울어대는 내가 감당이 안 되었든지 한참 후에 한국말을 하는 군인이 와서 나를 데리고 엑스선 사진을 찍고 검사를 했다. 왼팔에  깁스를 했다.  아픈 통증도 가실 즈음에야 정신이 들었다. 어두워 졌는데 집에는 어떻게 찾아 가야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한국말을 하는 군인도 가버리고 흑인 군인이 주는 이상한 음식을 앞에 두고 먹을 줄도 모르고 나는 또 울었다. 집에 전화도 없었다. 집에 보내 달라고 떼를 쓰고 있는데, 그때서야 한구군인 통역관도 오고  교장선생님과 아버지가 오셨다.
 미군 차에 부딪치고 실려 가는 것을 본 친구가  학교에 신고하고 또 집으로 연락했다고 한다. 나의 행방을 찾지 못해 여기 저기 수소문해서 밤늦게야  찾아오신 것이다. 교장 선생님과 아버지는 그래도 영어를 좀 하셨다. 교장 생님과 아버지가 나를 상태를 물어 보고는 집에 가서 치료만 받아도 되겠다고 하여 우리는 통행금지 사이렌이 불었는데도 미군 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그날 이후, 난  우리학교에서 최초로 교통사고를 당한 학생이 되어 유명해졌다. 교장선생님은 아침조회를 할 때마다 차를 잘보고 다니라고 훈시하셨다. 그러나마나 여전히 그 신작로엔 차보다는  아이들이 더 많이 뛰어 놀았다. 다친 팔의 깁스를 푸는 건 미군 부대로 가지 않고 동네의 병원에서 했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미군이 찾아왔다. 꽃과 사탕과 초코릿 과자가 가득 담긴 상자와 카드를 주면서 뭐라고 말하는데 한마디도 알아  듣지 못했다. 처음으로 초코릿을 먹었다. 월남에서 온 삼촌이 사 온 미제 과자보다 더 맛있었다. 그 특이한 맛은 지금도 입안에 달콤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맛에 반해 교통사고가 조금 잘 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요즘은 교통사고가 하루에도 수십 건씩 일어난다. 차가 워낙 많다 보니 나만 조심해서도 안 된다.  자원봉사로 5년 동안 교통지도를 하다보면 몰지각한 운전자를 보면서 저런 사람은 사고를 내면 과연 양심있게 행동할까를 생각해 본다. 살다보면 사고를 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대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도 달라지고, 사고가 추억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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