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소설가>

 요즘 한창 인기 있는 주말 드라마의 주인공 여자의 인생이 파란만장하다. 이혼하면서 정을 떼기 위해 억지로 아이에게 매몰차게 대하는 장면에 가슴이 미어진다. 연기자가 대본에 의해 하는 연기임에도 나의 눈물샘은 마를 줄 모른다. 만나는 사람마다 드라마 이야기다. 세상에 그렇게 나쁜놈이 어디 있으며 여자의 앞날이 가시밭길이라고. 드라마라고 해서 전혀 상상도 못할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들었던 이야기나 있을만한 이야기를 작가가 쓰지 않았을까? 세상에는 드라마보다 더 기가 막힌 일들이 많으니까.
 어릴 때 신앙을 가진 적이 있었다. 간증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아주머니들이었다. 그분들은 건강, 남편의 방탕, 시댁과의 갈등, 경제고에 시달렸다. 기도로 잘 극복했다는 체험을 들으면서 나는 어려움이 닥치면 극복할 자신이 없으니 제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인생이 되길 바랐다.
 그 후, 교회는 나가지 않았지만 그 때의 기도가 통했는지, 아니면 마음으로도 죄짓지 않고 살려고 노력한 덕분인지 무난하고 평안한 삶이었다. 그렇게 내 인생은 끝나갈 줄 알았다. 성실한 남편, 착한 아이들, 자원봉사하면서 남에게 내가 가진 걸 베풀면서 하루하루를 보람 있게 살아갔다.
 내 나이 서른아홉.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우울 속에 나날을 보냈다. 어느 날  친구가 함께 사업을 해 보지 않겠냐고 했다. 그때까지 전업 주부로만 살아 온 나는 평생 무슨 일을 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선뜻 하마고 했다. 그렇게 우연한 기회에 창업을 했다.
 사회경험이라고는 없는 40대 주부 셋이 거창하게 벌인 사업은 시작부터 자충우돌 이었다. 모든 게 처음이었고 기획한 것마다 실수가 거듭되었다. 주위에서도 격려보다는 질투와 시샘이 더 많았다. 직장 일, 공부, 가정주부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심사숙고하지 않고 너무 가볍게 시작 했나 후회도 되었다. 그러나 내 속에 있는 승부근성은 그 때부터 발동 되었다. 가장 어려운 시기야 말로 기회다라는 마음으로 공부와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안정되어 갔다. 사업이 잘 돼도 걱정이었다. 많은 걸 책임진다는 것은 두려움이다. 모두가 만족해야 하는데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오만에 빠지지 않고 소비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했다. 5년,10년의 시간이 화살같이 지나갔다. 내 앞에 이렇게 어려운 가시밭길이 있을 줄 미리 알았다면 안락한 가정주부로 안주 했을 것이다. 물론 주부역할도 가치 있는 일이다. 주위의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 아줌마가 뭘 하겠냐는 시선에서 이제는 ‘대단하다!’ ‘어떻게?’ 라며 자문을 구한다.
 오랜만에 다시 주말 드라마를 본다. 남편은 뻔한 스토리에 눈물 질질 짜는 드라마를 왜 그리 열심히 보느냐고 하지만 "드라마는 아줌마의 힘이다"라며 열심히 본다. 이제 주인공 여자는 이혼의 아픔도 극복하고 당당하게 사회속의 나들이에 성공한다.
 세상에 나가보니 내가 얼마나 하찮은 것에 일희일우 했는지가 보였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직장이 아니라 꿈이 있고 미래가 있는 일을 가진 것에 감사 할 따름이다. 내가 가진 재능을 베풀고 그것으로 돈까지 벌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세상속의 나들이에서 나는 인생의 다른 가치를 배우고 있다. 날마다 나만의 인생드라마를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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