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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찾아서
  • 안산신문
  • 승인 2021.03.0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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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1980년대 대학생 시절에 접한 연극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충격이었다.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무대장치도 거의 없고, 지루한 기다림만 보여 주는 연극이라고 할 수 없다는 기억만 남아있다. 얼마 전 지인의 초대로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보았다. 역시 난해했다.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인은 자주 연극적 대사를 읊조렸다. “부조리란 목적이 없는 것이다. 인간은 길을 잃었다. 즉 그의 모든 행동은 의미 없고 부조리하며 쓸모없게 된다. 우리는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의미 없는 일에 참으로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베케트가 영어와 프랑스로 쓴  『고도를 기다리며』는 프랑스에서만 300회 이상 롱런했고, 이후 세계 50여 나라에서도 공연되었는데, 이는 현대극의 새 지평을 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미국에서 초연될 때 연출자 알랭 슈나이더가 베케트에게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베케트가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자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틀 동안의 사건을 다룬 『고도를 기다리며』의 줄거리는 단 한 개의 단어 ‘기다림’이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이 두 명의 부랑자가 ‘고도’라고 하는 인물을 기다린다. 고도가 누구인지, 이 둘은 왜 고도를 기다리는지 알 수 없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사건은 오직 기다린다는 사실 하나다. 작품 곳곳에서 반복되는 이 둘의 다음과 같은 대사에 독자와 관객들은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에스트라공 : 그만 가자.
블라디미르 : 가면 안 되지.
에스트라공 : 왜?
블라디미르 :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 참 그렇지.

 베케트는 이 작품의 무대를 “시골길, 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며 무미건조하게 제시해 놓았는데, 그 어떤 적극적 선택이나 결단도 없이 오직 ‘기다림’만을 사건으로 하는 이 작품의 무대다. 황량한 시골길과 이름 모를 마른 나무 한 그루는 실상 ‘무대의 부재’를 의미하며, 이는 이 무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언어들의 ‘의미의 부재’, ‘목적의 부재’를 암시한다. 몰개성적인 이 둘은 그저 나무 밑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서로 엇나가기만 하는 말장난과 광대놀이를 일삼을 뿐이다. 두 부랑자는 여전히 기다림에 묶여 있다. 작품 말미에 “그럼 갈까?” “가자”하고 마지막 대화를 주고받지만 두 사람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으며 연극이 끝난다.

 노벨 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천재 작가가 창조한 ‘고도’와 ‘기다림’은 무한한 해석의 세계로 열린 창과 같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목적도 없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 누구, 그 무엇을 기다리기만 한 날들이 우리에게도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은 ‘고도를 기다리며’가 아니라 ‘고도를 찾아서’살고 있는가?  고도는 결코 오지 않는다. 우리가 찾는 고도가 있고, 고도를 찾으려는 우리의 의지가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비로소 베케트의『고도를 기다리며』는 ‘찾아나서는 이에게 비치는 찬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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