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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성과 사회성의 조화
  • 안산신문
  • 승인 2022.12.0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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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나는 참으로 많은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문학모임, 봉사 모임, 스포츠 모임, 친목 모임 등. 연말이 되니 모든 단체에서 송년회를 하여 날마다 모임에 나가게 된다. 그것도 같은 날 점심 모임, 저녁 모임이 있는가 하면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두 세 곳이 겹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최근 2~3년 동안 활동이 많지 않아서인지 올해는 더 적극적으로 모임에 참여하라고 권유한다. 나름대로 원칙을 정해서 참여하지만 참석 못 하는 모임에는 핑계가 되지 않아 막무가내로 오라고 우격다짐하거나 읍소를 하여 곤란할 때가 있다. 그래서 무리하게 참석하다 보니 내 몸이 몸살이 나고 다른 일을 등한시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원칙과 융통성의 불협화음이다.
 어떤 단체나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원칙은 종종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다. 다수의 주장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종종 소수 의견을 무시하거나 매도하기도 한다. 개인은 자기 생각을 상대에게 강요하다가 안 되면 단체의 일을 세상에 알려 자기의 생각이 옳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사람도 많다. 모임의 회칙을 들여다보고, 모임에 기반한 자신의 주장이 진짜 옳은지 판단하기보다는 법이나 세상에 회자하여 주목받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많다. 당연히 단체는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되 최선의 노력으로 자유가 침해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원칙이란 어떤 일의 근거와 기준이 되는 기본적인 도리나 법칙이다. 인간은 일을 할 때 구성원들 모두가 수긍하고 인정할만한 기준이 없으면 혼란에 빠진다. 이 때문에 합리적으로 일 처리를 하고자 하는 조직은 대부분 그들이 인정하는 원칙이 있다. 그 사회 구성원들은 그 원칙에 근거하여 판단과 행위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그러나, 원칙이 현실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고 원칙주의를 고집하면 그 원칙은 오히려 구성원들의 소통에 장애요인이 된다. 이 원칙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다. 세상의 일이란 그 원칙이 정해질 때의 상황과 항상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은 변화할 수 있다. 구성원들 대부분의 생각과 가치관이 이미 변했음에도 그 원칙이 구성원들의 바람과 같이 변하지 않을 경우, 그 사회의 의사결정 구조는 경직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그 원칙은 삶의 활력소가 아니라, 고통의 멍에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원칙은 잘 사용하면 약이 될 수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될 수 있다.
원칙과 융통성은 서로 다른 별개의 영역으로 분리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원칙과 융통성은 항상 병행해야 한다. 원칙이 없는 융통성은 가벼운 기회주의로 전략하고, 융통성이 없는 원칙은 완고한 불통을 양산한다. 따라서 원칙과 융통성은 항상 유기적인 통일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생생하게 발휘되어야 한다. 이 고집불통의 사람을 자주 만나면 피곤해지고 그 모임에 대한 회의마저 든다. 그런 사람은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겐 냉혹하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대중화.획일화 양상을 보이는 현대 사회에서 다수의 횡포 속에 고사 위기에 처한 개별성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그리고 개별성과 사회성의 조화를 꾀한다. 밀이 개별성을 강조한 것은 그 본질상 한번 훼손되면 재생되기 어렵기 때문이지 사회성을 등한시한 것은 아니다.
 공자도 “함께 배울 수는 있지만, 함께 도에 나아갈 수 없고, 함께 도에 나아갈 수는 있지만, 함께 설 수는 없으며, 함께 설 수는 있지만, 함께 권도를 행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 법이나 윤리는 원칙을 우선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도 중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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