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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사람
  • 안산신문
  • 승인 2024.04.0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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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아직 꽃은 만개하지 않았지만, 땅에는 새싹들이 돋아나고 꽃을 피우고 있다. 봄에 가장 먼저 싹을 내미는 냉이나 별꽃은 씨앗을 맺는 중이다. 자연의 순환에 감동하는 나날이다. 땅이 부드러워졌다. 주말농장에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사다 심었다. 이미 풀들은 자기영역을 차지하고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렸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밭갈이를 끝내고 거름을 내고 이미 농사에 들어갔다. 동네를 돌아다니는 선거유세 차량의 노래나 홍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 경건하다.
 밭 옆에는 언덕이 있는데, 그 위에는 서낭당이 있고 큰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다. 일하다가 그늘에 가서 쉬기 좋은 곳이다. 나는 아침 일찍 가서 모종을 심고 풀을 뽑기 때문에 성황 나무 아래에 가기를 꺼린다. 성황 나무 아래에는 가끔 굿을 하고 있어서 괜히 터부시되었다. 아침 일찍 밭에 가면 굿을 하는 사람이 보여서 딴 세상 사람같이 보였다. 제대로 굿 구경을 해본 적이 없는데 혹시나 빙의된 모습을 실제로 보면 어떨까 무섭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일찍 밭에 갔는데 고급승용차 한 대가 밭 가에 주차하고 있더니 내가 차에서 내리자 와서 인사를 했다. 굿을 하기로 하고 무당을 기다리다가 나를 보고 무당인 줄 알았다고 했다. 여기 와서 자주 굿을 하냐고 물었더니 집안에 병원에서도 못 밝히는 병에 걸린 사람이 많아 굿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서울에 살고 천주교를 다니며 직업이 약사라며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자신도 약을 팔지만, 약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이 훨씬 많다고 했다. 자신도 얼마나 힘들면 이곳까지 왔겠느냐며 한탄했다. 곧 무당과 굿패가 와서 성황 나무 아래로 가서 굿을 시작했다.
 밭일은 하지 않고 나는 굿 구경에 몰두했다. 물론 가까이 가는 것은 못 하고 멀리서 바라본 것이다. 나무 아래에는 과일과 음식을 잔뜩 차려 놓았다. 무당을 상징하는 화려한 옷은 아니지만,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무당과 북을 치는 사람, 열심히 주문을 외우며 나무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 각자의 역할이 있었다. 굿을 의뢰한 여인은 처음에는 조용히 기도하더니 나중에는 큰 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나무 주변을 돌아다녔다.
 기이한 병이 대물림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조상의 탓이라 여길 수 있다. 조상이 유전병이 있거나 직업적 특성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관으로 보면 우리 조상들의 생활 습관이나 가치관이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실체가 된 것이다.
 영화 <파묘>에서는 묫자리가 화근이라고 여겨 조상의 묘를 이장하면서 장의사, 풍수사, 무당까지 합세하여 나쁜 기운을 몰아내려고 한다. 혼령이 나쁜 땅에서 괴로워한다는 발상은 우리나라만의 이야기일 것이다. 조상의 묘가 좋은 곳에 있으면 자손이 번성한다는 설은 많이 듣기는 했다. 영험한 땅, 나무, 강 등. 그런 것들이 있어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면 좋지 않은가?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속설에 놀아나는 건 아닌지. 그런 것을 잘 믿고 공부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만날 때마다 그런 이야기를 해서 나는 약간 비웃었다. 그로 인해 그 친구와는 멀어졌다.
 굿을 끝내고 가면서 배, 사과, 포도를 한 상자나 나에게 주고 갔다. 전이나 떡은 사람들이 싫어한다면서 과일은 괜찮지 않냐고 했다. 나는 물론 다 괜찮지만, 또 괜찮지 않았다. 난생처음 본 굿 구경에 무당을 만나서 대화한 일이라 당황스럽긴 했다. 모두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일인데 낯선 아침 풍경이었다. 나의 밭작물은 성황 나무의 기운을 받아 올해도 풍작이 이루어지려는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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