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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를 읽다
  • 안산신문
  • 승인 2024.04.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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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주 지음, 다산초당

 이덕무(1741~1793)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다. 그는 정조의 명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유고집이 간행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문장가였으며 시문비평, 동아시아 삼국과 서양 문물 풍속기, 국내외 여행기 등 백과사전을 방불케 하는 방대한 주제와 분량의 저술을 남긴 지식인이기도 했다. 책만 아니라 글쓰기에도 미쳐 있던 이덕무의 글쓰기에 대한 신념은 ‘동심과 순수’ 이 두 가지로 축약된다. 이덕무는 자신의 호를 ‘영처(嬰處)’로 지었는데 영처란 어린아이와 처녀를 말한다. 어린아이와 처녀 같은 마음 즉 동심과 순수성을 간직하며 영처의 시선과 태도로 글을 짓겠다는 뜻이다. [이덕무를 읽다]는 이러한 영처의 미학 속에서 평생 글을 읽고 쓴 이덕무가 지은 글, 그가 엮은 책, 그와 가까이 교제했던 북학파 문인들의 문장 뿐 아니라 이덕무가 평생에 걸쳐 수집한 명문들을 한데 모아 담은 책이다. 
“그 소리가 동글동글한 별 같아요. 보일 것도 같고 주울 것도 같아요.”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형상을 가지고 소리에 비유하는구나. 이는 어린아이가 무의식중에 표현한 천성의 지혜와 식견이다. 예전에 한 어린아이가 별을 보고 달 가루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말은 예쁘고 참신하다. 때 묻은 세속의 기운을 훌쩍 벗어났다.” - <이목구심서> 1, 책 48쪽 
 우리는 동심을 미숙하고 유치한 것으로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이덕무를 읽다] 속에 이덕무가 수집하고 모은, 그 자신이 지은 글귀들은 동심의 면면을 천진하게 보여준다. 동심은 가식, 꾸밈이나 과장 없이 타고난 순수를 그대로 드러낸다. 동심은 어제 본 것을 오늘 봐도 새롭다. 오래된 관습이나 전통에 메여 있거나 세간의 시선을 의식하는 속된 태도로는 이런 동심을 담을 수도, 비칠 수도 없다. 18세기 당시 이덕무를 비롯한 북학파 지식인들은 전통적인 기준과 관점에서 벗어나 어린아이와 같은 태도로 세계를 보았다. 실용의 세계로 탐구의 영역을 확장하고 어떤 것에 몰두해 미치는 지경이 되는 일을 반겨했다. 그 정도로 미쳐야 독창적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터득하는 정신을 갖추고 전문적인 기예를 습득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고문과 문화를 추앙하던 당시의 행태를 크게 거슬러 조선의 것을 이야기하되 현재의 눈으로 헤아리려 했다. 옛것을 배우고 익히되 그로부터 반드시 스스로 깨달아 자신만의 내공을 가지고 옛것을 모방하고 답습하지 않으려 한 것이다. 그런 그들의 태도는 진보와 혁신으로 이어져 18세기 조선의 문예 부흥에 영향을 주었다고 이 책은 설명한다. 
 옛것을 본받는다고 하는 사람의 큰 병폐는 옛것의 흔적에만 얽매이는 것이다. 또 새롭게 창조한다고 하는 사람의 큰 병폐는 지켜야 할 내용과 형식을 해치는 것이다. 참으로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화에 통달할 수 있고, 또한 세계를 창조하면서도 내용과 형식에 잘 맞추어 글을 지을 수만 있다면, 그러한 글이야말로 바로 지금의 글이자 옛 글이기도 하다. - 박지원, [연암집], 책 172쪽 
 이야기가 넘쳐나고 문장들이 홍수같이 넘실댄다. 미친 척 하는 자들은 많으나 진정으로 미치는 자들은 적다. 이덕무가 추구한 영처의 심장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래서 [이덕무를 읽다] 속의 글과 문장들이 더없이 향기롭고 맑게 느껴지는가 보다. 300여 년 전, 동심의 글쓰기를 추구했던 문인들의 자세를 배워 크게 깨닫는다면 우리 역시, 이 시대에 필요한 진보와 혁신으로 나아갈 수 있는 비결을 얻게 되지 않을까? 그런 소망을 가지고 [이덕무를 읽다]라는 책을 망원경 삼아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내면 풍경을 들여다본다.  

정상미<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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