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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
  • 안산신문
  • 승인 2024.04.0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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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중<꿈의교회 담임목사>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뜨와네뜨’는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에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혁명이 성공하고 나면, 이전의 권력자가 비참한 처지에 놓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왜 이전의 권력자가 왜 비참하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마리 앙뜨와네뜨는 왜 죽임을 당했을까요?
  역사 기록에도 마리 앙뜨와네뜨가 백성들의 분노를 샀던 이유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항의하는 백성들을 위로 해주고, 진정시키는 것이 왕비의 역할인데 그 왕비는 오히려 더 강하게 백성들을 진압하는 것에 동의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마리 앙뜨와네뜨’라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루머가 하나 있습니다. 프랑스 왕과 왕비가 살았던 베르사유 궁전은,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약 3만 명이 동원된 큰 공사 끝에 완성이 되었습니다. 굶주린 백성들이 이 베르사유 궁전으로 몰려와서 빵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니까 이 마리 앙뜨와네뜨가 ‘빵이 없으면 케ㅤㅇㅣㅋ을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역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루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백성의 처지를 전혀 공감하지 못했던, 왕과 왕비의 태도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중요한 말이 바로 ‘역지사지’라는 말입니다. 이 ‘역지사지’와 관련된 한 이야기가 있는데, 고대 중국 ‘하나라’에 ‘후직’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백성을 돌보는 관직에 오르자, 지나가는 길에 자기 집이 있어도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일을 하러 갑니다. 
  사람들이 ‘후직’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고달픔을 생각하니 도저히 쉴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한 끼도 먹지 못하는 백성들을 생각하면서 자신도 음식을 한 끼 이상은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그 당시 임금이었던 우임금도 이 ‘후직’과 똑같이 행동했다고 합니다. 이들의 태도를 보고 나온 고사성어가 바로 ‘역지사지’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보다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쉴 수 있을 때 충분히 쉬고, 일할 때는 더 집중해서 일하는 것이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고통받고 있다면 ‘우임금’과 ‘후직’과 같은 자세로, 그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 더 아름다운 모습일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온종일 먹지도 못하고 지쳐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보리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초자연적인 기적보다도,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배고픔과 고통을 이해하시고 먼저 돌봐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역지사지’가 잘되지 않는 사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아전인수격으로 자기 입장에서만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과 처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상황에만 함몰되어 있다면, 그것은 ‘마리 앙뜨와네뜨’가 걸었던 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눈을 들어 다른 사람을 보고, 귀를 열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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