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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시작되는 곳
  • 안산신문
  • 승인 2024.04.1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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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 에세이

 염색물에 새하얀 천을 담그면 고운 빛깔이 천에 어여쁘게 묻어나는 것처럼, 연둣빛에 노란 나비가 손에 그대로 묻어날 것 같다. 그러면서 그 고운 빛깔이 어쩐지 내게 희망을 전해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기분 좋게 책장을 펼쳤다. 
 한 걸음씩 걷다 보면, 그 한 걸음이 모여 어느새 더 큰 걸음을 걸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전하는 윤슬 작가는 기록 디자이너이며 20년간 한결같이 글을 쓰며 살아왔노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저 멀리까지가 아니고, 우선은 저기까지 한 발짝만 가보자며 살짝 손을 내민다. 자신이 지난날 마구잡이로 욕심내며 많이 읽고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 했던 책 읽기도,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을 온전히 소유할 방법을 배워 삶의 의미를 밝히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감정이라는 것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본질적으로 위험한 게 실은 정상입니다. 감정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변덕을 부려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성에 따라 움직일 것 같지만, 실은 절대적으로 감정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잘해 오던 일도 순간적으로 속상한 감정이 밀려오면 괜스레 변덕을 부리고, 억울하다는 생각과 함께 굳이 사서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회의감마저 듭니다.(35쪽) 대부분 같은 일도 그날의 감정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았으리라 생각된다. 저자는 뭔가를 함에 있어서 절대로 기분이 좋은 날만 하지 말고, 그렇지 않은 날도 꾸준히 실천해 나가기를 당부한다. 기분과 상관없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반짝거리는 삶이 눈앞에 바짝 다가와 보람된 인생을 살 수 있게 됨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1부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조금씩 좋아진 삶의 과정을 소박하게 기록했다. 그 소박함이 오히려 읽는 이에게는 진정성이 느껴져, 어쩐지 마음에 큰 위로가 된다. 그리고 2부에서는 글쓰기에 진심인, 글쟁이로서의 삶의 여정을 잔잔하게 풀어 놓았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2년 정도 흘렀을까. 어느 날 출판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에세이 책 출간하지 않으실래요?”(121쪽) 이렇게 여유 시간이 생겨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네이버 블로그에 꾸준히 쓴 글이, 저자에게 책을 출판할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이 책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도 지난 일 년간 블로그와 브런치에 쓴 글을 묶어서 출판하게 되었다고 하니, 책을 읽다 보면 자연히 글쓰기와 책을 출판하게 된 과정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어 글쓰기와 책 출판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블로그에 몇 년 글을 쓴다고 다 작가가 되거나 책을 출판할 기회가 찾아오는 건 아닐 게다. 하지만 자신이 기록한 글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은 분명하다. 모든 곳에 이야기가 있고, 모든 이야기에 삶이 있다는 윤슬 작가는 무엇보다도 ‘나를 사랑하고, 내 삶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이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다른 누군가를 위한 인생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인생이니까…….
 사람들은 저마다 제각기 가는 길이 다르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며 생활하는 전업 작가에서부터, 그저 자신의 마음을 위로받으려고 글을 쓰는 이도 있을 것이고,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쓰는 이 등, 아마 이유와 방법은 다양하리라 생각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저자가 글을 쓰며 살아온 삶의 경험을 고스란히 담은 이 책을 후반부까지 차분하게 읽다보면, 문득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 어디쯤인지 살짝 궁금해지리라 생각된다. 지나온 삶이 너무 팍팍해 무의식적으로 너무 오래, 너무 많이 잊고 살아서 얼마나 기억으로 되살릴 수 있을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책을 읽는 동안 내 이야기를 시작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가슴 속에 꿈틀거렸으니까……. 
 이 책을 읽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는 이가 있다면, 이제 우리 함께 용기 내어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된 곳을 찾아 첫 발자국을 떼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민복숙 (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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