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에너지 사용해 ‘제로 에너지 주택’ 실현
독일 남부 프라이부르크 중심가에서 약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보봉(Vauban)’은 미래세대와 함께 공존하는 대표적 생태마을이다.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활용한 친환경 마을로도 유명세를 타면서 전 세계적인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대지면적이 38ha 정도인 이 곳은 원래 우리의 용산 미군기지처럼, 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병영이었고 1992년 연합군이 철수하기 전까지는 프랑스군이 주둔한 병영지였다. 프랑스군의 철수가 결정되자 프라이부르크시는 이 병영지 활용방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포럼 보봉’이 출범했다.

‘포럼 보봉’은 당시 주택난에 허덕이던 가난한 학생들과 빈민들이 주축이 된 생태마을 조성을 위한 주민자치모임이다. 시는 이 자치모임을 인정하였고, 이들의 의견을 전문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구(GRAG)와 전문콘셉을 수립했다.

우선 시 행정부(도시계획청)와 주민자치모임(포럼 보봉), 그리고 시의회에서 결정되는 모든 개발사항들을 미리 협의하고 자문하는 기구(GRAG gemeinderatliche Arbeitsgruppe Vauban :보봉지구 개발을 위한 시의원들의 그룹)가 밀접하게 의사교류를 하면서 이 병영지를 어떤 방향으로 개발할지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렸다.

이 과정에서 몇가지 원칙을 세웠는데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다양한 계층을 위한 주택공급, 자연과 환경보존, 저에너지 사용 등이 그 것이다. 이에 따라 석유나 석탄, 원자력 등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는 에너지 이용을 거부하고 태양광과 바이오매스(음식찌꺼기나 쓰레기를 발효시켜 에너지로 활용하는 것)를 주에너지원으로 선택했다.

이 곳에서는 집을 신축할 땐 옥상에 나무를 심거나 지붕에 태양광이나 태양열 시설을 설치하는 태양주택(패시브하우스)으로 짓는 것이 지구상세계획으로 의무화돼 있다. 그러다보니 건축면적 1㎡당 난방사용량이 년간 65kwh를 넘지 않는다. 일반 주택의 년간 난방사용량이 보통 300kwh인 것에 비해 5분의 1 수준이다. 주택신축 의무사항이기도 하지만 저에너지 사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결과다.

또 단지 내엔 작은 규모의 풍력 발전기가 설치돼 있고 톱밥을 이용한 열병합 발전 등으로 단지 내 90% 정도의 세대가 난방열과 전력을 동시에 얻고 있다. 이렇게 얻는 전력 중 쓰고 남은 것은 일반 전기회사에 팔기도 하는데 2007년 판매한 잉여전력량이 9천kwh나 된다. 자연이 주는 각종 에너지를 최대한 받아들이면서, 단열과 통풍을 철저히 함으로써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별도로 끌어오지 않는 ‘제로 에너지 주택’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 주민의 참여와 아이디어로 생태환경 조성
이 곳의 친환경성은 단지의 공간배치와 삶의 방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우선 마을내부로의 자동차 진입을 차단했다. 보행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대기오염도 줄이기 위해 공동주차장을 마을 외곽에 설치했다. 대신 마을 안으로 전철을 끌어들였다.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마을 안으로 전철이 평균 5~6분 간격으로 운행중이다.

필요할 때 자동차를 빌려 쓰는 ‘Car Sharing’과 버스도 잘 연결돼 있어 굳이 자가용이 없어도 생활하는데 큰 불편이 없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에도 생태적인 가치를 최대한 살리려는 노력들이 묻어난다. 나무로 만든 그네, 넝쿨이나 꽃으로 만든 장난감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마치 ‘숲속 놀이터’를 떠올리게 한다. 튀빙엔에 있는 샤프브륄(Schafbruehl) 생태마을과 비슷하다.

쓰레기 발생과 물 사용도 최소화해 순환적 생태시스템이 갖춰지도록 했다. 재활용과 재사용을 통한 자원의 리사이클과 분리수거 생활패턴이 매우 철저하다. 분리수거함이 곳곳에 비치돼 있고 음식물쓰레기를 퇴비로 활용하기 위한 퇴비수거함도 눈길을 끈다. 마을을 새로 조성하면서는 수령이 60년이 넘는 아름드리 나무들은 베어내지 않고 그대로 보존해 조경수로 활용하고 있다.

마을 남쪽에 흐르는 개울물(Reichenbach) 역시 주변지역을 자연적인 비오톱(Biotop, 생물소공간)으로 보존했는데 자연 생태계가 주거환경의 질을 높이는데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이런 생태적 주거환경 조성은 시 행정기관이나 특정 전문가만의 의견이 아니라 주민들의 아이디어와 참여를 바탕으로 진행됐다. 보봉(Vauban)은 자신만의 편익과 편리가 아닌, 공동의 삶에서 평안과 안식을 찾는 것이 ‘진정한 웰빙’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 다양한 조합으로 통합형 공동주택 지어
보봉(Vauban)은 단독주택이 없다. 개발 초기부터 저소득과 고소득 계층이 더불어 사는 ‘사회통합형’ 주거형태를 단지의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3~5층 높이의 연립 아파트인데 사회적 약자에게도 ‘내집 마련’이 가능하도록 소규모 건축주에게 작은 토지의 판매를 우선적으로 배려했다.

자가용 소유를 거부하는 가정, 비슷한 크기의 주택을 원하는 가정, 친구끼리 모여 사는 가정 등이 다양한 형태의 조합을 구성해 공동주택을 지어 입주했다. 이는 주민 스스로 원하는 스타일에 맞춰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공동생활을 할 수 있는 활력소가 된다.

튀빙엔의 조합주택과 비슷한 개념인데 경제적 형편에 따라 같은 아파트단지 내에서도 평수를 구분해 동을 떼어놓거나 개인 소유와 임대형태로 분리하는 우리의 주거환경과는 크게 다르다.
특히 보봉의 주된 개발전략은 아니지만, 기존 병영지 막사를 부분적으로 이용해 특색있는 거주문화를 만든 ‘SUSI 프로젝트’는 눈여겨 볼 만하다.

‘SUSI’는 저렴한 가격에 거주지를 원했던 학생과 무직자, 독신자 등이 모여 만든 ‘스스로 조직된, 독립적인 주민운동단체’인데, 이들은 개발 초기 비어있는 군 막사를 철거하려 하자 이에 반대해 서로 힘을 모아 시 정부로부터 4개의 군 막사를 사들였다.

그 후 4년 만에 군 막사를 생활공간으로 새롭게 리모델링해 현재 260여 명이 이 곳에서 거주하고 있다. 보봉 전체적으로는 2008년까지 약 5000천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주택과 600여 개의 직장을 수용하는 지속가능한 생태단지 조성이 목표인데 현재 4천300여 명이 생활하고 있어 이런 계획이 거의 마무리 단계다.
● 인터뷰 / Mr. Lutz 보봉구 경관(조경) 계획가

“친환경 마을을 만드는 과정에 주민들의 참여는 당연한 것입니다. 보봉은 공청회 등을 통해 모아진 주민들의 의견을 시 당국이 수렴해서 만든 생태마을입니다. 현재 보봉의 주민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주민만 150명이 넘습니다”

보봉단지의 조경(경관) 계획가인 Mr. Lutz(사진)씨는 ‘대안주거’로서 환경과 미래세대를 위한 삶의 공간을 가꾸려면 주민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베를린에 살던 그는 생태도시의 가치를 표방한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것을 계기로 보봉으로 이사와 환경운동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마을 중심에 위치한 노천광장을 ‘주민의 공간’으로 지켜내기 위해 신발이 닳도록 뛰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2001년 시 당국이 마을광장을 대형마트 등을 짓는 상가부지로 비싸게 팔려고 했었죠. 생태마을에 대형마트가 어울리기나 합니까? 그래서 주민위원회를 중심으로 12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5년 동안이나 줄기차게 반대운동을 했습니다.

그 결과 2006년 시가 매각계획을 철회했고 지금은 벼룩시장이 열리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주민의 공간으로 남게 됐습니다”생활이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안전성과 친환경성을 높이기 위해 계획단계부터 마을 내에 주차장을 없앴다.

주민위원회 결정을 거쳐 주차장은 마을 외곽으로 빼고, 대신 마을 안으로 전차와 무공해 버스를 끌어들였다. “단지 내엔 자가용이 다니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습니다. 교통량이 줄어들어 마을의 생태환경도 잘 지킬 수 있구요. 작은 불편이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준 셈이죠”

특히 자연환경을 인위적인 조경으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존할 때 비로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마을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원칙이다. 그래서 그가 손수 만든 단지 내 어린이 놀이터엔 나무 한 그루, 돌조각 하나까지도 옛 모습 그대로 살아 숨을 쉰다.

“자연이 주는 에너지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자연의 남긴 산물을 지키면서 인간과 환경의 상관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 바로 이것이 미래세대를 위한 생태가치이고 진정한 ‘웰빙’ 아닐까요?”

강형민 기자  khm@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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