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서해안 관광지의 메카로 자리잡은 시화호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있다. 이들은 동양 최대의 조력발전소와 유니버설 관광단지를 관람하고 시화호에 요트를 즐기려 왔지만 공해의 대명사였던 시화호가 관광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한 역사에 대해서는 아는바 없다.
이 곳에 시화호의 탄생 배경부터 시화호를 살리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 그리고 생명이 다시 살아 숨쉬는 과정을 구성해 이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전할 수 있다면 또 다른 매력도 시화호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문화재와 관광지에 역사적 고증을 거친 이야기를 불어넣어 살아 숨쉬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지역 문화 스토리텔링'이다. 바로 여기에 적절한 마케팅 기법을 가미한다면 지역 문화재 관광객 유치에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미 슬로베이아 노바고리차와 이태리 베로나 등은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통해 관광객 유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분단의 역사를 승화시킨 슬로베니아 노바고리차>

노바고리차(NOVA GORICA)란 도시는 한국과 정서적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된 곳이라면 노바고리차는 마을이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로 분단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점령지였던 이곳은 이후 독일이 패전하자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게된다. 이후 2차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가 패전하자 도시 대부분이 유고슬라비아연방에 편입되게된다.

 

△분단의 아픔을 기록하고 있는 '고리스카 박물원'은 스토리마케팅을 통해 유럽 각지에서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강대국의 의해 분단된 도시

 

그러나 당시 강대국의 이권 다툼 속에 도시의 중간을 가로지르는 국경선이 정해졌고 철조망이 설치됐다. 대부분의 상권이 지금의 이탈리아지역인 구도심(고리차)에 속해 있다보니 슬로베니아 주민들의 불편함은 극에 달했다.

 

△국경이 없어진 노바고리차와 이태리 경계선상의 상징물

이동이 자유로웠던 한 마을 사람들이 한순간에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분단된 것이다. 분단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경우다.

 

이런 분단의 아픔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고리스카 박물원’이 도심에 자리잡고 있다. ‘고리스카 박물원’에는 노바고리차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유물로 가득하다.

노바고리차를 점령했던 독일군과 이탈리아, 옛 소련과 미국 군인들의 제복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으며 유고슬라비아 연방시절 사회주의 상징인 별모양 조형물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특히 당시 주민들이 분단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벌였던 ‘빗자루 행진’을 왜곡한 당시 이탈리아 우익 신문의 ‘Hanno Invaso Gorrizza(고리차가 습격당하다)’란 기사도 전시해놔 언론의 선동이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기록하고 있다.

그 박물원 앞에는 슬로베니아가 유고슬라비아연방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국경선을 가로지르던 철조망을 제거하고 광장을 조성해놨다.
이 광장에는 57과 15라는 숫자가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국경선을 가로지르던 철벽 숫자를 의미한다. 

◆ 화합의 상징이 된 노바고리차

바로 이 광장에서 슬로베니아가 유렵연합(EU)에 가입하는 조인식을 개최해 ‘새로운 유럽’의 시대가 열린 것을 상징했다. 

지금은 화합을 상징하는 도시로 이미지메이킹이 돼 연중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 인근 국가에서 이곳을 찾는 이들을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2005년 3월 개원한 박물원은 현재까지 각국의 언론인 등 3만여명의 관광객들이 다녀갔으며 전쟁의 교훈과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고리스카 박물원 마린카 벨리코니쟈(Marinka Velikonja)씨는 “주민들의 생활과는 상관없이 강대국의 의해 정해진 국경선으로 인해 분단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노바고리차를 기록하기 위해 박물원을 개관했다”고 밝히고 “역사를 바로 알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야할 젊은 세대들에게 옳바른 역사를 알리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재창조하는 공간으로 활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학과 오페라의 도시 베로나>

베로나(Verona)는 도로와 철도가 이탈리아 북부의 광야에 들어서는 곳에 위치해 있다. 예로부터 이곳은 교통의 요지이자 상업의 중심지로 발달했다. 이탈리아를 동경하는 마음으로 알프스를 넘는 관광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도시 베로나. 기계·제지·인쇄 등이 발달한 공업 중심지이지만 무엇보다도 오늘날 베로나를 지탱하는 중추 동력은 원형극장인 '아레나'와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대표되는 문화다.

 

△오페라의 전통만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문화적 트랜드를 과감하게 접목시켜 다양한 콘서트가 개최되는 원형극장 '아레나'

◆새로운 트랜드를 접목시킨 아레나

베로나는 오페라도시로 알려져 있다. 바로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원형극장인 ‘아레나’가 있기 때문이다.
1913년 베드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오페라 아이다’가 초연된 이후 로마시대때 검투장으로 사용되던 ‘아레나’는 오페라 공연장으로 명성을 얻게된다. 

 

현재에는 세익스피어 연극제와 오페라 축제의 공연장으로 이용되고 있고 10년전부터는 오페라 극장뿐만 아니라 대중음악과 락 콘서트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고전에만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문화적 트랜드를 과감하게 받아들여 접목시킨 결과다.

매년 5월부터 9월까지 각종 콘서트를 위해 아레나는 개방되며 지난해만해도 72회의 공연이 이곳에서 펼쳐졌다. 이중 오페라는 49번이 공연됐으며 나머지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공연과 뮤지컬이 열렸다.

특히 오페라 축제가 열리는 7~8월에는 연간 50만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베로나를 찾는다.

 

△줄리엣 동상의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통해 200만 관광객을 끌러 모으는 베로나심

◆베로나에는 로미오도 줄리엣도 없다

세익스피어의 대표적인 비극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집에 들어서면 세계 각국에서 몰려운 관광객들이 적어논 ‘연인들의 사랑의 서약문’이 빼곡이 붙어있다.

 

줄리엣의 집 마당에 들어서면 ‘오~창문을 열어다오~’하며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고백 했다는 발코니가 보인다. 그리고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줄리엣의 동상’이 있다.  이 같은 스로리텔링으로 이 곳을 찾는 관광객만 한해 200만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70%가 외국인 관광객이다.

 

△베로나시 문화부 가르리렐레 렌(Gabriele Ren)담당

그러나 ‘줄리엣의 집’은 허구다. 베로나(Verona)시에서 관광객을 유치하고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으로 베로나 중심지에 줄리엣의 집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문화도시를 지탱하는 문화 콘텐츠는 눈에 보이는 경쟁력 있는 문화자원뿐만 아니라 상상력과 창의력이 동반된 소재를 통해서도 만들어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체든 실체와 유사한 모조품이든 감동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부분이다. 

이 같이 베로나에는 줄리엣도 없고 로미오도 없다. 그러나 줄리엣의 집이 있고 무덤이 있으며 아레나 원형극장에서 울려 퍼지는 세레나데는 분명히 있다. 또 영원한 사랑을 믿으며 사랑의 성지를 찾아 전 세계에서 모여든 로미오와 줄리엣의 추종자들도 있다.

오늘날 베로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탄생시킨 세익스피어의 업적에 고마워하며 안주하지 않는다.  베로나가 가진 로미오와 줄리엣의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게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레나를 통한 오페라의 도시 이미지와 ‘로미오와 줄리엣’의 문학적 소재를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을 접목시킨 장소마케팅을 통해 도시경쟁력을 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베로나시 문화부 가브리엘레 렌(Gabriele Ren) 담당은 “베로나를 ‘사랑’에만 집중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보고, 즐기고, 머물 수 있도록 제공할 수 있는 도시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히고 “베로나가 갖고 있는 유형의 자산을 활용해 관광마케팅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형욱 기자  hyung@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