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채 논설위원

1996년 1월에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지는 지난 천년 동안에 일어났던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했던 인물과 최악의 인물을 선정, 발표하였다.

12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하나의 제국으로 건설한 몽고의 칭기스칸이 지난 천년 동안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혔다.

칭기스칸의 뒤를 이어 영국 작가 사무엘 존슨이 당당하게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사무엘 존슨이라는 영국 작가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9년에 걸친 피나는 작업 끝에 ‘영어사전’을 만들어 냈는데, 이 사무엘 존슨의 ‘영어사전’덕분에 영어권이 오늘날 세계를 조직적으로 제패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것을 보면 워싱턴 포스트지의 선정 기준이 다소 영어권 중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속이 상하기도 한다.

아마도 그 선정 위원들이 우리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알았다면 사무엘 존슨이 차지한 두 번째 자리는 우리 세종대왕에게 돌아왔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저 모르는게 죄라고 넘어갈 수 밖에...

그리고 지난 천년동안 인류 역사상 가장 독창적이고 위대한 공을 남긴 과학자로서는 금세기 최고의 과학자, 독일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선정 되었다.

이러한 인물들에 반해서 워싱턴 포스트지가 선정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인물들은 그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고 한다.

유대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인류 전체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아돌프 히틀러와 이오시프 스탈린, 그리고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히기도 했던 칭기스칸이 대학살의 업보를 면치 못해 1위 후보로서 치열한 접전을 벌인 것이다. 또 진화론으로 인종 차별론의 근거를 마련한 종교인이자 생물학자였던 찰스 다윈도 최악의 인물로 이름이 오르는 수모를 당했다.

이번 선정 중에서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은 인물은 역시 몽고 제국의 칭기스카이다. 칭기스칸이 건설한 인류 최대의 제국, 대몽고 제국은 동쪽으로는 태평양 연안에서 시작해 서쪽으로는 동유럽, 북쪽으로는 혹독한 추위와 시베리아까지 뻗어 올라가서 마침내 남쪽으로는 걸프전이 일어났던 바로 그 지점까지 내려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거의 지구촌 전부가 몽고 제국의 옛 영토였다고 해도 무방할것 같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위대한 투지와 야망, 그리고 뛰어난 운영 능력과 리더십이 생겨난 것인지, 7백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그는 영웅중의 영웅이다.

얼마전 서점가에서는 무협 소설들이 때 아닌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올린 일이 있다. 우리 사회의 현실 정치를 소재로 한 가상 정치 소설에서부터 ‘삼국지’, ‘수호지’, ‘열국지’에 이르는 고전까지 평소보다 20%이상씩 많이 팔리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난세에 영웅을 기다리는 무협 소설이 베스트셀러로 천하를 호령하고 있을 무렵 소설속의 영웅이 아니라 정말로 살아 숨쉬는 역사의 현장, 우리들 삶의 언저리에서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버린 영웅의 이야기도 있었고, 현실 정치에서 실패한 후 다시 자신의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 가겠다는 전직 최고 권력자의 아름답고 의미있는 귀거래사가 펼쳐지기도 했다.

프랑스 국민들의 한결같은 영웅으로 또 연인으로 오랬동안 집권했던 고(故) 미테랑 대통령과 폴란드 자유노조의 선두주자였고 최초의 민선 대통령으로 폴란드 민주주의의 터전을 닦아 놓은 바웬사 전 대통령의 이야기다.

자기 나름대로의 뚜렸한 정치 철학을 가지고 프랑스의 문화를 끈질기게 지켜낸 고(故) 미테랑 대통령의 업적이나 국민의 선택을 인정하고 다시 생활인으로 돌아가겠다는 바웬사의 귀거래사야말로 영웅이란 어떤 존재냐 하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닐까 싶다.

‘영웅’이라는 칭호는 단지 칭기스칸처럼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건설 했다고 해서 주어지는 이름도 아니고, 그저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이거나 대내외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고 얻어지는 명예도 아니다.

자기 나름의 생활 철학을 가지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자기 맡은 바 책임과 의무를 다할때, 또한 자신의 일과 직장에 대해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때 우리 모두는 비로서 참된 영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박규채 논설위원  webmaster@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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