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나면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줄기를 뻗어 가는 칡 순처럼 모든 것이 들에서 산에서 자란다. 그토록 거름을 주고 관수를 해도 채소 한 포기 잘 키우기가 쉽지 않은데 거기가 어디든 뿌리내린 자리에서 있는 힘을 다해 자라고 있는 유월의 풀과 나무들이 대단해 보인다.
유월에도 변함없이 공원을 걷는 노인이 있다. 팔십은 족히 넘었을법한 나이에 허리는 펼 수 없도록 굽었고 한쪽 다리가 성치 않아 걷기조차 힘들어 보이지만 지팡이를 의지하고 날마다 정한 시간 공원에 나와 걷는 운동을 하고 돌아 간다. 말이 운동이지 그것은 몸부림이다. 온몸으로 한계와 맞서 싸우는 전쟁이다. 나는 그 할머니의 총력전에서 유월의 녹음보다 더 위대한 힘을 본다. 그것은 한계에 도전하는 힘이 아니라 한계를 수용하는 힘이다.
우리가 뭘 잘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실상 우리는 모두 받아들이는 일에 미숙하다. 그래서 다 떠났다고 외로워하고 그럴 줄 몰랐다고 서운해 한다. 그럴 수 있느냐고 원망하고 헛살았다고 억울해 한다.
특히 고령화시대를 맞이하여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 많아지는 노년층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는 이때에 수용의 지혜는 더욱 요구되는 능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많아지는 나이도 약해지는 건강도 다 인정하고, 굽어지는 허리도, 느려지는 발걸음도 다 수용하고 춘하추동 묵묵히 나의 산책길을 걸어가는 할머니가 힘 있어 보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벌써 대통령이 되기라도 한 듯 사람들의 줄서기도 한창이다. 실권의 매력이 원래 큰 자리인지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언행으로 얼룩져 더러는 발악하는 모습으로까지 비춰지기도 하는데 이런 때 필요한 것도 수용하고 인정하는 자세일 것이다.
충고도 수용하고 비판도 받아들이고 지지자의 함성에 도취되지 않고 반대자의 냉소에 발끈하지 않고 유월의 숲길을 온힘으로 걷는 노인처럼 그렇게 가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007년의 대한민국이 들려주는 소리를 수잔나의 딸처럼 수용하며 말이다.
웨슬리 수잔나는 영국의 종교개혁자 존 웨슬리와 챨스 웨슬리의 어머니로 유명하다. 그녀의 탁월한 자녀교육 방법으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특별한 이야기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에 속 썩이던 딸을 회심시킨 이야기가 있다.
한동안 행실이 바르지 못한 딸은 그에게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딸은 고집불통이었고 못된 친구들과 계속 어울려 지냈다. 어느 날 수잔나는 검은 숯을 한 다발 가져와 딸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숯을 한번 안아보렴. 뜨겁지 않단다.” 그러자 딸이 기겁을 했다.
“뜨겁지는 않지만 손과 몸이 더러워지잖아요.”
그때 수잔나가 딸을 꼭 껴안으며 말했다.
“사랑하는 딸아,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란다. 바르지 못한 행실은 화상을 입지는 않지만 몸과 마음을 더럽힌단다.”
그때 딸은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어머니의 뜻을 수용했다. 딸을 수용한 어머니의 지혜와 어머니를 수용한 딸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저 들과 산과 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수용하는 능력 때문이다. 봄도 여름도 그들은 넉넉히 수용한다. 가을도 겨울도 그들은 모두 수용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배출한 오염과 소음까지도 수용하고 온갖 앙탈과 절규와 푸념까지 모두 품고 산은 산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자신들의 아름다운 빛을 여전히 발산한다. 그 자연을 향하여 올해도 휴가철이 되면 너도 나도 품어 달라 찾아 갈 것이다. 그리고 그 품에서 행복해 할 것이다. 이 시대의 신음하는 경제는, 정치는, 문화는 누구의 품에서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인생이든, 자연이든, 세상이든 품어주는 자가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한 웃음을 짓게 될 것이다.
/그사랑 교회 목사
최세균 논설위원 webmaster@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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