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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갈래 길
  • 안산신문
  • 승인 2023.09.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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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니에토 구리디 글.그림/ 지연리 옮김, 살림)

이제 세상은 예쁨을 강요받지 않아도 되는 세상입니다. 겉보기로 무언가를 판단하고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것에는 겉과 속이 있고 속이 겉과 전혀 다른 경우도 존재합니다. 그러니 무엇이든 안을 꼭 열어보자고 다짐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다짐은 언제나 다짐에서 그칠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겉표지만 보고 이 책을 고르고 말았습니다. 살구빛 길과 남색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들의 뒤쪽 먼 하늘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두 길 사이에는 빨간 꽃 한 송이가 피어 있고, 길 주변에는 연두색 풀들이 벌어져 있습니다. 단순하고 평범하지만 예쁩니다. 예뻐서 골랐습니다. 그림책에 예쁜 그림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일까요?

이 책은 2014년 마드리드 서점 조합이 선정한 ‘최고의 그림책 상’을 받은 스페인의 작가 라울 니에토 구리디의 그림책으로, 2018년 ‘볼로냐 국제어린이 도서전’ 픽션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제목은 두 갈래 길입니다. 살짝 뻔해 보이기도 하고 어딘가 들어본 것도 같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그 유명한 시를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저 혼자만이 아닐 겁니다.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딘가에서/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가지 않은 길’ 부분)
물론 인생을 길에 비유하는 것도 프로스트가 처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길을 보고 인생을 떠올리고 강을 보고 역사를 떠올리는 것은 인류 유전자 단위의 보편적 사고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도 비슷합니다. 길의 시작은 작은 집에서부터입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그 순간부터 길은 이어집니다.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약간의 뻔함은 꽤 큰 편안함을 가져옵니다. 
"인생은 길과 같아." (9쪽)
인생이 길과 같다면 출발점이 되는 집은 어머니의 자궁이라고 할까요. 아쉽게도 안전하고 따뜻한 곳에서 계속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 길을 신기해하면서 걷든, 두려워하면서 걷든, 성큼성큼 걷든, 조심조심 걷든, 어쨌든 누구나 걷습니다. 깊은 숲속에서 갈래길을 마주하고는 고민해야 하고,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걷다가 달리기도 하고, 멈춰서서 잠시 주변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어두운 동굴을 걷기도 하고, 장애물을 넘기도 합니다. 바닷가를 목적 없이 헤매기도,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길들은 이어집니다. 그리고 언제나 길 끝에서는 무언가 있습니다. 아름답게 물든 가을의 숲이라거나, 너무도 좋아하는 빨간 꽃 한 송이라거나, 한동안 못 만난 친구라거나. 아니면 나올 때보다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집이 살포시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인생은...... 찬란해지지 (35-36쪽) 

내 앞에 길이 있다는 것, 그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은 같지만, 그 길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인생은 찬란한 것입니다. 인생의 매 순간이 찬란하길 바라면서 이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책의 첫 인사말처럼 기도해봅니다. 여러분의 지난 모든 길이 아름다웠기를, 지금 걷는 이 길과 앞으로 걷게 될 길이 모두 눈부시기를. 여러분도 이제 이 예쁜 그림책을 살포시 펼쳐보시는 건 어떨까요?  

김현숙(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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