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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 안산신문
  • 승인 2024.01.18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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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릴 줄 알아야 성공합니다.” <고도를 기다리며> 김학철 배우가 한 말이다. “포조 역을 맡기까지 60년의 세월을 기다렸다. 이 세상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라고 한 말이 인상 깊다.   이십 대 젊은 날, 표제의 ‘고도’가 무엇이었는지 확실치 않았던 책이 여전히 나에게 묻는다. 내게 고도는 뭐냐고. 나는 꿈이라고 대답한다. 기다리면 어느 날 불쑥 희망이 이름을 불러줄 거라고. 소장하고 있는 책은 하서 출판사에서 발간한 <고도를 기다리며 외>에 열한 편이 수록되어 있다. 민음사 <고도를 기다리며>엔 한 편만 수록되어 있다. 비교하며 읽어도 번역본은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1969년 노벨문학상 수상 날짜가 하서 출판사엔 1962년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어 오류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사무엘 베케트는 극작가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엄격한 청교도 집안에서 자랐다. 시인이면서 비평가, 소설가로 라디오, 드라마, 영화의 극본 등 다양한 작품을 펼쳤다. 1953년 부조리극으로 칭한 <고도>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베케트는 이 공연으로 저명인사가 된다. 신문과 방송에서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물었지만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2차 대전 발발 당시 보클루즈에 숨어 살며 피신한 생활 경험이 <고도>의 밑그림이 되었다. 베케트에겐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자신의 바람이 고도였을 것이다. 말라 죽어가는 나무에 하룻밤만에 봄이 와서 잎사귀가 무성하다면 그 사이 신이 다녀갔을까. 하지만 베케트는 이 작품에서 신을 찾지 말라고 경고했으니 고도에 대한 정의는 구원을 갈망하는 관객에게 맡겨졌다. 그것이 고도 씨든. 저마다 다른 고도로. 
 등장인물은 엑스트라공 (고고)과 블라디미르(디디) 럭키, 포조, 소년 등 다섯 명에 불과하다. 배경은 시골길에 한 그루 나무가 전부다. “여보게, 자네 아직도 있었군, 거기에,” 첫 페이지 대화다. 도대체 언제 만났는지 가늠이 가지 않는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고, 엑스트라공은 신발이 발에 맞지 않는다며 블라디미르에게 벗겨달라고 한다. 이에 블라디미르는 의미 있는 말을 던진다. “제 발이 잘못됐는데도 구두 탓만 하는 게 인간이라고.” (13쪽) 신발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발에 신발을 맞추지 않으면 아프고 피가 난다. 두 방랑자는 잎사귀 하나 없는 나무 앞에서 고도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고도의 생김새도 모른 채. 어젯밤에 왔었는지조차 모르고 기다린다. 도둑은 구원될 수 있는지 지옥으로 떨어질 것인지 이 나무는 교목인지 관목인지 만나기로 한 날이 오늘밤인지 목요일인지도 모르고 기대하며 기다린다. 고도는 깊이 파묻혀 있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기다리는 일은 시간이 성립한다. 두 방랑자는 얼마나 더 기다릴 것인가. 고도에게 꽁꽁 묶인 채.
 포조: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오. (51쪽) 슬픔에는 총량이 있어서 내가 울고 있으면 다른 누군가는 웃고 있을 거라고 해석하면 세상은 공평한가.
 읽는 동안 셰익스피어의 햄릿처럼 비극적이지 않지만 암울하다. 희극 속의 비극처럼. “목매달아 사람이 죽으면 거기서 떨어진 물에 만드라고르 풀이 자라고 그 풀을 뽑으면 삑 하는 소리가 난대” 둘은 말라비틀어진 나무에 당장 목을 매달아보자고 한다. 가벼운 사람이 먼저. 에스트라공은 고도에게 한 줄기 희망 같은 것을 부탁했다고 말한다. 침묵이 긴장감을 자아낸다. 기다리는 동안 둘은 시간을 죽이기 위해, 살아있음을 실감하기 위해, 꿈 이야기도 하고 당근을 먹기도 한다. 말을 많이 하면 시간이 잘 가니까. 무대에 포조와 럭키가 등장한다. 포조는 잔인할 만큼 럭키를 학대하고 럭키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복종한다. 부르조아의 희생양처럼 럭키는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른다. 모자를 씌워줘야만 생각을 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중얼거린다. 무대 뒤에서 소년이 나타나 고도의 전갈을 전한다. 고도는 오늘 밤은 못 오지만 내일은 온다고. 오지 않는 고도는 암흑이다. 혼돈 속에서 두 방랑자는 함께 지낸 지 50년 쯤 됐다고 말한다. 2막에 소년이 다시 나타나지만 고도는 오지 않는다. 희망의 얼굴을 한 소년은 도망가고 고고와 디디는 체념한 듯 목을 매달자고 한다. 고도가 오면 살고 목을 매달면 죽음이다. 
 블라디미르: “그럼 갈까? 에스트라공: “가자”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158쪽) 
 올 거 같기도 하고 오지 않을 거 같기도 한 고도라는 존재. 빵처럼. 죽음처럼. 희망처럼. 베케트의 허무만 남아 있다. 아무도 오지 않고 아무도 가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곳에서 독자는 어떤 고도를 기다리는가. 1952년 출간된 고전이 2023년 12월을 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홍혜향<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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