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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다
  • 안산신문
  • 승인 2024.04.1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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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꽃잎은 하늘하늘 눈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산속에 있는 성당과 부속건물은 중세 유럽의 성처럼 중후하고, 고즈넉하다. 피정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을 찾은 것은 행운이었다. 종교의 의식이긴 하지만 우리는 소풍을 온 것처럼 상기되어 있었다. 오늘 하루 몸과 마음을 쉬어 가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피정의 뜻은 원래 가톨릭 신자들이 자신들의 영신 생활에 필요한 결정이나 새로운 쇄신을 위해, 어느 기간 동안 일상적인 생활의 모든 업무에서 벗어나 묵상과 자기 성찰 기도나 종교적 수련을 할 수 있는 고요한 곳으로 물러남을 말한다.

 우리 일행은 가톨릭 신자도 아니지만,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피정의 집에서 몸과 마음을 쉬어 가고자 한 것이다. 문학회에서 10년째 봉사활동을 가는 곳이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봉사자들을 위한 피정을 간다고 하여, 10여 년 만에 우리도 따라나섰다. 나의 몸과 마음도 피정을 통해 쉬어 가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절이나 교회는 가본 적이 있지만, 성당의 미사는 결혼 미사 외에는 경험해보지 못해서 알아보고 싶기도 했다. 천주교와 미사에 대해 새로운 정보도 많이 알았다. 그러나 하루의 교육 일정은 우리에게 비판과 평가의 대상이 되었다. 현대사회는 종교가 그럴수록 종교가 필요한 시대이다. 그러나 첨단 문명사회에서 신의 영역은 모두 침범당하고 유명무실하였다. 고루한 방식으로는 종교가 이어지기 어려운 세상이다.

 18세기 실학자 정약용은 서학이라는 천주교를 믿어서 파직과 유배를 갔다. 천재 과학자, 정치가, 교육자인 정약용은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서학이라 불리는 천주교에 먼저 귀의하게 된다. 그가 천주교를 받아들일 때 어땠을까? 세상의 질서가 재편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조선이라는 유교 사대주의 사상에 갇혀서 우물 안 개구리로 살다가 서양의 학문과 사상은 그에게 하늘을 내려치는 충격적인 문화였을 것이다. 그 당시 천주교를 받아들인 젊은 학자들도 젊은 학자들의 눈도 뜨였을 것이다. 개안이라는 단어가 적합한 시기였다. 조정의 대신들은 서학이 중심인 신학문이 위험하다고 분류하였다. 그리하여 정약용을 비롯한 그의 형제와 친척들은 흑산도나 강진 등으로 유배 가거나 처형을 당했다.

 종교로 인한 극한 상황에 처한 정약용의 형제들은 마음으로는 서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않은 것 같지만 내면으로는 더욱 신심을 공고히 하는 계기로 삼았다. 다산의 제자 육성, 수많은 저술은 유배지에서 나온 것이다. 유배지의 불편함과 감시는 오히려 학문을 성장시키고 정치가가 백성을 다스리는데 어떤 자세로 인해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아마 정약용은 유배를 자기 신심 생활을 단련하는 피정이라 여기고 산 듯하다.

 주최 측의 피정 프로그램이 비신도인 우리에게는 좀 맞지 않았다. 꼬박 4시간 강의만 듣고 깨우치기에는 우리는 아예 신심이 없었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자연에서의 시간과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사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난 것도 좋았다. 일평생 자신의 영달과 개인의 꿈보다는 봉사와 희생을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 힘은 종교에서 나오는 것일 것이다. 그들은 진심으로 구원을 믿는 것이다.

 믿는 대상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사람의 일생은 달라진다. 믿는 대상은 다양하다. 자신의 꿈을 믿고 도전하는 사람. 신의 뜻에 따라 사람을 구하기 위해 사는 사람. 그 대상을 향하여 진실한 믿음을 가지면 치유가 되기도 한다. 믿음은 아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대상을 향하여 진실로 믿는 것. 아집에 가득 찬 나는 그 궁극의 목적이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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