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말했다. 『각본없는 드라마다』라고. 강요하지도 애써 이끌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오르는 산 모퉁이마다 붉게 물든 단풍만큼의 자유와 아름다움이 내내 등반대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가끔씩 꿈꾸었을 「자유」와 「해방」에 대한 몸부림이 이날 하루만큼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모두에게 새로운 자유와 해방으로 다시 살아났다.



세상을 향한 목소리 『나는 자유인이다』 어느 누구도 자유에 대한 얽매임도 속박도 이날은 느끼지 못했다. 휠체어를 타고 목발을 짚고 힘겹게 오른 산이지만 그 정상에서 맛본 자유와 해방은 다시금 「나래」가 되어 훨훨 산정상을 휘감아 돌았다.



『산 정상에서 바라본 세상은 평소 거리에서 보던 세상과는 너무도 달랐어요. 이젠 뭐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요』



해발 424m 안양시 삼성산 정상. 단순히 산높이를 따지기 전에 누구나 오를 수 있는 나즈막한 산모퉁이지만 힘써 올라선 「그들」에겐 이날 등반이 남다른 감격과 애정으로 물씬 가득했다. 『하루쯤 시간내서 산이나 한번 가지』라는 일상적인 인사와는 사뭇 다른 구석이 많았기 때문이다.



게으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평소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부류라면 누구

나 쉽게 접하는게 「등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불편한 몸으로 살아가야 할 형편이라면 맘처럼 「산에 한번 가보자」는 속내를 드러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휠체어를 타고 목발에 의지해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사람이라면 「산」은 항상 「거기에 서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산」은 분명 「거기에 서 있었다」. 스스로 오르는 힘이 부족할 땐 옆에 함께하는 사람이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낯선 그 사람의 얼굴에서 희망을 보았고 사랑을 느꼈다. 연신 땀방울을 훔치면서도 휠체어를 밀어주고 불편한 다리를 대신해주는 사람들의 온기가 어렵지만 산정상에서 힘껏 세상을 향해 『나는 해냈다』는 외침을 가능하게 했다.





안산신문사와 장애인종합복지관이 공동 주최한 제3회 장애인 합동등반대회엔 여느해보다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줄을 이었다. 한양대학교와 안산1대학 등 관내 대학교외에도 촛불봉사단 블런티어 안산 육군 51사단 등 일반 시민과 군인까지 장애인과 하나된 마음으로 산에 오르려는 화합의 물결이 내내 골짜기마다 메아리쳤다.



이들 봉사자들은 휠체어를 뒤에서 밀며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을 옆에서 이끌며 산에 올랐다. 누구하나 관심있게 지켜본 이가 없더라도 2시간여에 걸친 산행길에서 오빠가 되고 언니가되고 형이 되고 부모가 되어 사랑의 마음을 나눴다.



혹 산에 오르다 힘겨워하는 「동반자」를 볼때면 수건으로 땀방울을 닦아주고 물한모금을 나누며 「벗」이되어 오르는 산행은 그대로 자유의 몸짓으로 서로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번 장애인 합동등반대회에 참가한 장애인은 무려 800여명. 장애인복지관에서 재활을 담금질하고 있는 장애인 200여명 외에도 신천중 화랑초 원곡중 중앙초교 등 관내 10개 초·중학교 특수학급에서 교육받고 있는 장애학생 120여명이 산에 오르며 움츠렸던 가슴을 활짝폈다.



또 선진학교 명혜학교 평화의집 등 정신.신체장애학생과 안산재활훈련원에서 재활의지를 다지고 있는 산재장해인 80명 노인복지관과 초지복지관 정신보건센터에서 삶을 추스리는 장애인 등 800여명의 장애인들이 한마음으로 서로를 부추기며 산에 오르는 동안 「장애는 극복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 됐다.



가을은 가을이다. 삼성산 골짜기마다 짙게 물든 가을단풍은 산에 오르는 이들의 마음마다에 세상의 아름다움을 곱게 새겼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줄 몰랐어요』 연신 내뿜는 탄성는 이제 갓 세상을 접하는 어린아이의 감동이 아니라 새롭게 마주하는 세상에 대한 자신감에서 배어나온 감탄사였다.



한걸음 한걸음 쉽지 않는 산행이었지만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소리조차 세상을 향한 당당한 외침을 끝내 가로막지는 못했다. 친구와 함께 부모님과 함께 선생님의 손을 잡고 자원봉사자 언니 오빠의 도움을 빌어 오르는 동안 땀방울은 연신 얼굴에서 목덜미로 등줄기로 쉴새없이 흘러내렸지만 발걸음을 쉬지는 않았다. 장애인과 자원봉사자 모두 『나는 산에 오르고 있다. 당당하게. 나 혼자만의 힘으로』라고 스스로 맘을 다졌기 때문이다.

<강형민 기자 khm@ansanilbo.com>





■51사단 장병도 자원봉사 산행...



군인들이 「총」대신 「사랑」을 잡았다. 51사단 장병 20명은 자원봉사자를 자청하며 이날 장애인들과 함께 삼성산을 올랐다.



알록달록 군복을 입은 장병들의 모습은 깊어가는 가을 짙게 물든 단풍처럼 삼성산 곳곳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장병들을 이끌고 함께 산에 오른 51사단 16중대장 김남혁 대위는 『군생활에서 「나」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며 내내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51사단 장병들은 앞서 19일에도 정신지체 학생들의 배움터인 사동 명혜학교를 찾아 빨래와 청소를 하고 함께 놀아주며 사랑나눔을 실천했다. 김대위는 『집중정신 교육시간에 인성교육 차원에서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봉사실천을 장병들에게 적극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대한지 갓 두달만에 휠체어를 끌며 산에 오른 김태형 이병은 『누군가에게 내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더없이 기쁘고 보람된다』며 흐뭇함을 감추지 않았다.





■정신지체 학생과 『친자매』 산행..



산행에 나선지 1시간여쯤 지났을까. 힘겹게 산에 오르다 잠시 땀을 식히던 박현경양(명혜학교1년)이 갑자기 『가을은 참 예뻐요』라며 탄성을 내질렀다.

산길에 떨어진 단풍잎 하나를 줍더니 대뜸 함께 손을 맞잡고 산에 오르던 허지현씨(안산1대 간호학과1년)에게 건넸다. 자원봉사자와 장애인 등반대로 처음 만난 사이지만 여느 친자매와 다를바 없는 정겨움이 두 사람 사이에게 짙게 배어났다.



삼성산 정상까지 함께 오른 두 사람은 내내 꼭 붙잡고 있던 손을 놓지 않은채 환한 웃음을 건네며 『정말 수고했어』인사를 정겹게 나눴다. <사진>

정신지체 3급인 박양은 비록 어눌한 말투였지만 『언니 산이 너무 좋아요』또박또박 인사말을 잊지 않았다.



낮은 곳에서 사랑을 나누는데 삶을 바치고 싶다는 허지현씨는 『세상 어두운 곳을 비추는 촛불처럼 남을위해 봉사하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며 『현경이와 함께 산에 오르는 동안 겸손함과 사랑나눔의 소중함을 다시금 배웠다』고 말했다.

최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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