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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개의 스푼
  • 안산신문
  • 승인 2024.03.2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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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라고 쓰는 순간 사람이 튀어나온다. 깜박거린다. 움직인다. 살아있으니까 살아내야 한다고 삶이 힘차게 팔을 휘저으며 걸어간다. 보내온 누런 겉봉을 뜯는다. <200개의 스푼>은 뭘까 궁금하다. 수필집이다. 작가는 시도 쓰고 수필도 쓴다. 시에서 하지 못한 속엣말을 수필에서는 할 수 있다. <200개의 스푼>엔 스푼 말고 다른 무엇이 들어있으리라. 표지를 보니 ‘장애인 창작집 발간지원 사업 수상작품집’이다. 장애인문학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게 많다. 아니 관심을 가졌을까. 분명 좋은 작품이 많을 텐데. 1부에서 5부로 나누어진 삶에는 쓴맛, 단맛, 깊은 맛, 감칠맛, 아린 맛이 들어있다. 오미자처럼 벌써 입안에 다섯 가지 맛이 고인다. 쓴맛에는 저녁이 되지 못한 것들을 불러온다. 저물녘 작가는 집으로 가지 못했던 유년의 나를 부르고 집으로 가지 못한 저녁을 불러다 앉혀놓고 숟가락을 쥐어주고 싶다. (30쪽) 작가가 혼자 있는 저녁의 지점은 서럽고 쓸쓸하다. 나는 언제가 쓴맛이었을까. 가족이 한집에 살았을 땐 가족의 소중함을 몰랐다. 옥탑방에서 자취하는 친구가 부러워 옷가방을 들고 가 살았다.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을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러나, 옥탑방의 삶은 호락하지 않았다. 여름은 뜨겁고 겨울엔 얼었다. 수도꼭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 녹이지 않으면 찬물도 쓸 수 없었다. 간호사였던 친구는 불규칙한 근무로 들어오지 않아 혼자 자는 날이 많았다. 바람이 불면 저녁 창문이 컹컹 짖는 거 같아 무섬증이 일었다. 몇 달을 버티다 짐을 트럭으로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날 가족과 따뜻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떨어져 있는 동안 가족을 놓쳤다. 옥탑방에서 가족의 부재는 컸다.
 2부, 삶의 단맛에 <200개의 스푼>이 들어있다. 강 건너 카페 같기도 한 그곳에 작가의 상상이 펼쳐진다. 나부끼는 하얀 커튼에 끌린다. 스푼을 놓으면 드레스 자락을 말아 쥔 내가 보이고 숟가락을 놓으면 밥이 보인다. 그곳으로 가고 싶은 욕망은 환상을 불러오고 환상은 선망이 된다. 작가는 200개의 상념을 가지고 복지의 사각지대까지 들여다본다. 200개의 욕망이 줄을 서서 호수를 건넌다. (61쪽) 시를 써서 그럴까. 문체가 부드럽다. 조곤조곤 내가 사는 삶처럼 읽힌다. 200개의 스푼에 내 욕망도 올려본다. 샤넬 가방을 처음으로 샀다는 친구. 자신에게 물을 준 친구가 정작 드는 거보다 앞으로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을 때 나는 가방을 들어본다. 어깨에 메고 어떠냐고 묻는다. 내 욕망도 갖고 싶다. 하지만 들었던 욕망을 내려놓는다. 언젠가 들여다 본 법정스님 방엔 호롱불과 방석이 전부였다. 빈 방이다. 내 방에 있는 욕망은 얼마나 많은가.
 3부에 실린 ‘손톱’은 깊은 맛이다. 손톱에 두 개의 달이 떠 있다. (109쪽) 겉은 단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물컹한 ‘나’와 늘 밭일 하느라 손톱 밑이 까맸던 ‘어머니’ 의료사고로 8년간 식물처럼 누워있던 ‘언니’의 삶이 읽고 나서 아리게 박혀 있다. 작가는 이렇게 아픈 삶을 깊은 맛이라고 표현했을까. 가족이라는 인연 때문일까. 피붙이의 손톱을 깎다가 어느 날 희망을 놓쳤을 때 어떤 인연은 너무 슬퍼서 잘릴 때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내 손톱을 깎다가 떠난 영혼을 떠올리는 일처럼 슬픈 일이 있을까. 가슴을 파고드는 손톱이 깊숙이 남아있다.
 4부의 감칠맛과 5부의 아린 맛이 궁금하지 않은가. 작가가 삶을 다섯 가지 맛으로 나눴다면 읽고 나서 느끼는 다섯 가지 감정 또한 크다. 희망도 슬픔도. 마지막엔 ‘좋다’라는 감정이 더 차지하지 않을까.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타이핑을 하다 손을 쉰다. 부쩍 어깨가 아파오는 날이 많다. 어깨가 좋지 않으니 손목도 힘이 없다. 운동이 필요하다. 삶이란 시시포스의 형벌이 아니라고 적당히 견딘다. 
 봄비가 내려야 진짜 봄이 온다고 한차례 봄비가 지나갔다. 아직 나무에 망울만 보인다. 봄이 더디 오면 어떤가. 봄의 태엽을 감는다. 오르골 뚜껑을 열면 요정이 튀어나온다. 금방 사라질 시간이 천천히 돌아간다. 

홍혜향<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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