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장 귀하



길건너 힐튼호텔에서는 집권당 대선후보를 선출해놓고 샴페인을 터트릴 때 시장님과 저는 서울역광장에서 그날의 시위대의 선봉에 나섰습니다.



최루가스에 흩어지는 군중들을 다시 모으기 위해 애꿎은 전경들과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면서 죽을 각오로 거대 정권과 맞섰던 그해 6월 참 그날따라 왜그리도 바람 한점 없었던지.



시장님 오랜만입니다.



조국이 민주화된 오늘 그동안의 광기를 접고 월급쟁이로 소일하는 제가 이렇듯 시장님께 고언을 드리게 된데 대해 참으로 우울하기만 합니다.

이땅이 정치군인들의 군화발에 짓눌려 신음할 때 시장님과 저는 참 좋은 30대 나이에 오로지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10여년 세월동안 한데 잠을 자다시피 했었지요.



시민사회단체일만 앞장서도 정보형사들이 따라다니던 그시절 시장님은 참 무던히도 열심이셨지요.

그런데 공론으로만 그칠 줄 알았던 경정장 유치문제가 이제 가시화 되어가는 듯한 요즘 그일에 시장님이 앞장서실 줄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시장님 기억나시지 않습니까?

종로5가 약전골목 낡은 건물 2층을 빌어 밤을 낮같이 지새면서 이땅의 경제민주화와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경실련 본부 창립에 매진하던 시장님의 열정은 그저 쫓아다니기만 했던 권태근형과 저는 큰 용기를 얻기에 충분했었습니다.



송시장님 우리 안산이 도박산업을 유치해야 할 만큼 지방제정이 부실합니까? 그래서 알량한 서민들의 지갑을 터는 경정장을 꼭 건설해야만 합니까?

세수증대며 레저욕구충족이 좀 덜 되면 어떻습니까? 조금은 가난한들 아이들앞에 떳떳한 어른으로 살아가는게 더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우리 조금 불편하게 살면 어떻고 기름진 음식을 조금 덜 먹은들 어떻습니까.



주말에 가끔씩 자동차로 선부동 큰길을 지나다보면 유독 한군데 보행자신호대기를 기다리며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들을 봅니다. 행색이 누렇게 찌든 이들 군상들은 무더기로 서 있다가 단체로 길을 건너는 광경을 목도하곤 하였습니다.



시장님!

이 사람들이 도대체 주말 대낮에 무얼 하다 나왔길래 저리도 풀죽은 모습들인가 하고 알아보았더니 글쎄 근처의 대형빌딩 TV경마에 돈들을 걸었다가 털리고 돌아서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장님 언제 한번 짬내서 그 큰길에 나가보십시오.

대단히 실망하시겠거니와 경정장유치에 애쓰시는 시장님의 판단을 도와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경정장이나 경마장에 와서 배팅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월수입 200만원이하의 소시민들이라는 통계를 본적이 있습니다.



이들이 주말마다 얇은 유리지갑을 털어 배팅하고 악쓰다가 결국 실망스런 모습으로 발길을 돌리는 영상을 천천히 떠올려 보십시오. 백명의 가난한 사람 구호도 중요하지만 경정도박에 빠져 파산될 한명의 시민을 구하는게 시장님이 해야할 도리입니다.



도박은 어떤 구실로도 정당화될 수 없고 불법이기에 도박빚은 갚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판례가 깨진적이 없습니다. 경정장은 국가가 편법으로 허가한 도박장에 다름아닙니다.



독재시절 민초들의 정신상태를 흐리게 만들어 그들에게 대항하려 인간본연을 말살하려했던 독재자들의 통치수단의 한 방법에 다름 아닌 것이 프로야구요 경마경정 도박이었음을 부인하시겠습니까 시장님.



물론 한때 NGO를 이끌었던 시장님의 입장과 시장이 된 오늘의 시장님의 형편이 다르고 제정수입을 늘려서 소외받고 힘없는 서민들을 보듬고자 하는 시장님의 충정은 십분이해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이상이라 하더라도 목적을 위해 수단이 방기되면 옳은 정책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시장님 이제 목단꽃 흐드러지는 유월이 오면 좋은날 잡아 종로 약전거리 뒷골목 옛날 드나들던 선술집에서 머릿고기에 서울탁주나 한잔 드시고 그때 초심으로 돌아갑시다.



존경하는 송시장님!

경정장 건립정책만은 거두어들이시기를 시장님을 참된 목민관으로 믿는 제가 간곡히 부탁올립니다. 부디 신의 축복이 시장님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2003.3. 옛동지 임동균 올림. (원곡고등학교 운영위원장)

최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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