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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여행이야기 10무리한 일정이 만들어 준 값진 여행
  • 안산신문
  • 승인 2018.11.21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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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돌아보니 멀수록 더욱 좋다.’ 하는 ‘어부(漁父)’는 어부(漁夫)와는 달리, 세상의 명예와 이익에 마음을 빼앗겨 허덕이지 않고 좁은 낚싯배지만 대자연을 품에 안고 사는 살아가는 사람이다. -보길도에 있는 고산 윤선도 박물관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설명하는 글 중에서-

살다 보면 누구나 수많은 선택 앞에서 망설이게 된다. 짜장면과 짬뽕처럼 음식 선택에도 집중하여 고민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가? 굳이 결혼이나 사업 결정처럼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중요한 결정이 아니더라도 선택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목포대학교가 주관하는 생태계와 문화에 관한 국제 학술행사의 사전 현장 투어로 보길도 여행이 계획되어 있어 신청을 일찌감치 해두었었다. 보길도는 몇 번이나 갈 기회가 있었지만 가보지 못한 섬이었다. 더군다나 생태관광의 적지로 지목되어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가길 원하지 않은 곳은 자주 가게 되기도 하고, 정작 가고 싶었던 곳은 갈 기회가 자꾸 차단되었다. 그래서 여행 목적지도 사람 관계와 같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었다. 이번 보길도는 무조건 가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고 다졌었다.


  떠나기 이틀 전, 아내로부터 처가에 중요한 행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지난해에도 빠졌던 터라 못 간다고 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이 행사는 저녁 10시나 되어야 끝나고, 보길도로 가는 배는 완도항에서 다음 날 아침 7시 출발로 예정되어 있었다.

필자의 발표는 그날 저녁 6시이고, 발표 다음 날에도 역할이 있어 어차피 일박 이상을 해야 했다. 그러니 보길도만 가지 않는다면 걱정할 필요도 없고 여유가 있는 일정이었다. 이번엔 보길도행을 절대 놓치기 싫었다. 결국, 가기로 하고 서울로 가면서 2박 3일 치 여행 가방을 꾸려 출발하였다. 시간을 확인하니 쉬지 않아도 새벽 3시에 도착하는 누가 봐도 무리한 선택이었다. 그런데도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 하든 해보아야 하고, 이 어려운 일 뒤에는 좋은 일들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작동하였다.


  멀리 가는 길에 저녁을 든든히 먹으라고 친척들이 권하니 마다할 수도 없어서 잘 먹고 출발하니 처음부터 졸음이 조금씩 밀려왔다. 그래도 차가 밀리지 않고 찬 바람이 그나마 운전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세 번의 짧은 휴식과 바람 쐬기로 겨우 목표 시간을 조금 넘겨 도착하였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침구 속으로 들어가 꿈결 같은 잠에 취해 있는데 6시에 알람이 울려 고양이 세수만 하고, ‘그래 인연을 만들려면 이 정도 무리는 해야지’ 하는 생각하면서 방을 급하게 나섰다. 학술대회 주관자들이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고, 인원확인 후 부두로 향했다.


  바람결은 부드러웠지만 차가운 기온이 잠을 확실하게 깨워주었습니다. 파도는 높지 않으니 바다를 가르며 가는 맛이 있었습니다. 바다가 붉게 물들고 작은 불덩이가 동쪽 섬 위로 솟아오르니 객실에서 추위를 피하던 사람들이 다 뱃전으로 나았다. 선장의 배려로 일출을 보게 하려고 했다고 출발시각이 좀 이르게 했다고 하였다. 남쪽에서 북쪽 하늘까지 펼쳐진 줄 모양 구름이 일행들을 들뜨게 하였다. 하늘도 우리를 반겨준다며. 가끔은 세상일이 생각하는 대로 이끌려가는 것 같다. 좋은 생각과 긍정적인 결정 등이 행운을 만들어 내니까.


  보길도는 영화 ‘서편제’의 촬영장소이고, 고산 윤선도가 아름다운 인공 정원 세연정을 만들어 지냈던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전복 생산이 전국 최고다. 완도군이 전국 생산량의 60∽70%를 차지하고 그 생산량의 대부분이 이 보길도와 다리로 연결된 노화도에서 나온다. 아침은 전복죽이었다. 전복양식장에서 갓 잡아 올린 것으로 죽을 쑤어 커다란 그릇에 내어놓았다. 오랜만에 맛보는 진짜 전복죽이었다. 이어서 조선 시대 최고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우암 송시열이 남긴 시가 새겨진 ‘글 씐 바위’에 가보았다. 보길도 주변의 노화도와 소안도가 다 바라다보이는 높은 해안 절벽 위에 새겨진 암각 시에는 가슴 아픈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여든셋 늙은 몸이 푸른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구나(八十三歲翁 蒼波萬里中)”로 시작되는 시는 여든셋의 나이로 우암이 제주도 귀양길에 파도를 피해 잠시 들린 이 작은 섬에서 지었다. 남인의 고산은 서인인 우암이 왔을 때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암은 고산의 집이나 산소를 찾지 않았다고 한다. 우암은 같은 해 국문을 받기 위해 상경하던 중 정읍에서 세상을 마감하였다. 생각이 다르다고 죽고 죽이고 하는 일이 지금도 계속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착잡하였었다.


  이후 고산의 정원의 세연정을 방문하여 수수한 아름다움과 과학적 수리 설계로 만들어진 연못과 정자를 보며 옛사람들의 권력 크기와 자연에 대한 이해력에 대해 깊이 사색하였다. 보길도의 굵은 자갈과 몽돌로 된 해안이 여럿 있다. 이들 해안은 수려한 경관 미나 지질학적 중요성까지 겸비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 1. 남해에서 보는 아침 일출, 해는 세상을 이미 밝혀 놓고 빠르게 솟아오르는데 이때가 해의 색이 가장 붉다.
사진 2. 전복죽 맛은 그 재료의 신선함과 양 그리고 제대로 된 조리다. 이 세 가지가 다 갖추었다.
사진 3. 반원형의 공룡알 해변 끝에 뾰족 솟아있는 보죽산이 이 해변의 기반암에서 떨어저 나온 암석들을 알 모양으로 만들고 머물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사진 4,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洗然)’ 곳, 세연정이다.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작은 섬에서 살기 좋은 적지를 찾아내고, 아름다운 연못과 정자를 통해 산 옛사람들의 멋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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