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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 수집기<10>시집을 수집하기 시작하다.
  • 안산신문
  • 승인 2021.06.0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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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시리즈로 시작한 ‘세계시인선’은 1973년부터 시작하여 올해 2월에 발간된 47편까지 이어지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 시리즈 중 하나다. 최근 전체를 리뉴얼판을 내어놓았다..

   “누구나 즐겨 택하는 보편적인 주제는 피하고 당신 자신의 일상이 주는 주제를 택하십시오. 당신의 슬픔과 그리고 열망을, 무엇이든 아름다움에 대한 당신 자신의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나 믿음을 묘사하십시오. 그것들이 마음속에서 울려 오도록 은근하고 겸손하게 묘사하도록 하십시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주위의 사물들, 당신의 꿈의 영상, 추억의 대상들을 인용하십시오. 당신의 일상이 비록 빈약하게 보일지라도 그걸 탓하지 말고 당신 자신을 탓하십시오.” -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저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홍성호 역)’에서 인용 -

   시집을 수집하기 시작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은 시인이셨는데 시험을 늘 주관식으로 내었다. 한번은 성적이 반에 제일 좋았다고 교무실까지 불러 칭찬을 해주셨다. 아마 다른 시험에서도 필자의 답이 다른 학생들과는 좀 달랐던 것 같았다. “글재주가 있어.” 하셨던 것 같은데 필자는 “자넨 작가가 될 소질이 있어.” 하는 것으로 들렸다. 그 말은 일생 중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가장 기분 좋은 칭찬이었고, 아직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작가가 되는 꿈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건강도 안 좋아 휴직해 인연을 더 이어가진 못했다. 이후 영등포역 인근에 있는 한 교회에서 문학의 밤을 준비에 책임을 져야 하는 문화부장을 스스럼없이 맡은 것은 은근히 이런 자신감이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하지만 작가가 될 소질이 없다는 것은 이내 알게 되었다. 시 낭송을 해야 해서 자작시를 만들어야 하는데 일주일 내내 머리를 싸매도 글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한 편을 억지로 만들었는데 또 그것을 내놓을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친구는 속도 모르고 남는 시 하나 있냐고 물어 “그래” 하고 그 시를 주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필자는 행사날 다른 학생의 시를 내 시처럼 읽었다. 그 다음 주일에 한 여학생이 살며시 다가와 필자에게 “그 시를 어디서 본 적이 있어.” 하였다.
   아주 오랫동안 부끄러움에 자신을 자책하면 지냈다. 그리곤 앞으로 필자의 이름으로 나가는 글은 반드시 스스로 창작을 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그러나 다시 글 한 편을 쓰는 데에는 15년이 걸렸다. 사고를 친 몇 년 후인 1970년대 중반에 청계천 헌책방에서 ‘민음사’의 ‘세계시인선’을 보게 되고 몇 권은 고교 시절 교과서나 다른 참고서적에서 본 시인들의 이름이 있어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래 유명한 시를 읽어 보면서 시 공부를 해보자며 시집명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시집 중에는 라디오에서 들은 적이 있는 아름다운 시 ‘미라보 다리’와 같은 제목의 시집이 있어 꺼내서 시 목록을 보니 기억 속의 시가 있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 그러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로 시작되는 시였다. 작가의 이름도 몰랐었는데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라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최초의 애송시다. 지금도 그 시절에 구매한 시집 중에는 아직도 몇 권이 남아있다. 헤르만 헤세의 ‘흰 구름’, 에드거 앨런 포의 ‘애너빌&#61600;리’, 하인리히 하이네의 ‘바다의 망령’ 등이다. 출판연도를 보니 1973년과 1975년으로 되어있다. 출판사에서는 5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음을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47번째 시집은 셰이머스 하니의 ‘베오울프’다. 재미있는 것은 1973년에 정가가 300원이었는데 지금은 13,000원이니 43배나 올랐다. 아마 헌책방에서는 그 시집들을 100원 정도에 샀을 것으로 짐작한다.

개인사무실 서재와 집의 작은 방에 있는 책장에는 시집만 모아 둔 칸들이 있는데 목록을 정리하지 않아 모두 몇 권이 되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때부터는 여유가 있으면 항상 시집 관련 책을 사기 시작하였고 세어보진 않아 정확한 권 수를 알 수 없지만, 현재 200권이 넘는 시집을 보유하게 되었다. 어떤 시기에는 시집 초판본을 구하기 위해 인사동의 고서점을 찾기도 하고 신문에서 시집 출간 안내를 읽으면 동네나 종로의 새 책을 파는 서점으로 달려가기도 하였다. 당시엔 찾아낸 초판 중에 김소월과 김영랑의 시집도 있었으나 후배가 빌려 간 후에 돌려주지 않고, 어느 날 도자기 한 점을 선물이라며 가져왔다. 그래서 지금은 물물교환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인사동의 ‘홍문관(아직도 영업하고 있어서 서점 이름을 기억한다)’에서 산 것 중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해인 1950년에 정음사(正音社)에서 낸 현대시집(現代詩集) 제 일 권(第 一 卷)이 있는데 시인 정지용의 ‘춘뇌집(春雷集)’, 노천명의 ‘춘분(春分)’, 김영랑의 ‘찬란한 슬픔’, 김기림의 ‘바다의 과수원’을 함께 엮은 것이었다. 이 책을 살 때부터 이미 매우 낡았었지만, 필자의 방에 35년 있는 동안 더 바래고 약해져 만지면 종잇장이 떨어질 정도다. 이젠 퀴퀴한 냄새까지 난다.
   집중적으로 시집을 사들이고 읽은 시기는 1970년대와 1980년대였다. 1977년에 발간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나 1965년 출판된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시를 모은 시집 ‘흘러간 옛 생각’(이 책에선 저자를 ‘괴에테’라고 적었다.)도 이때 필자의 손에 들어왔다. 이후 한국 시인들의 시를 많이 읽었다. 처음으로 암송한 시는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였고, 가장 많이 읽은 시는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였다. “가을에는 /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이 대목을 좋아했다. 그 시절 애송했던 시는 다 서정적인 시였으나 시집을 살 때는 시인과 시의 명성을 고려하였다. 그래서 난해한 시집은 읽다가 만 것도 적지 않다. 시를 쓰고 싶은 욕심에 국문학과의 ‘시작법(詩作法)’ 과목 등을 선택하여 듣기도 하였다. 대학 3학년 때 나간 교생실습에선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시를 읽어주고 해설해 주는 주제넘은(?) 일까지 하여 그 학교의 국어 선생님의 미움을 받은 일도 있었다. 시에 대한 필자의 좌충우돌은 한 번 더 소개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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