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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 이야기<21>어느 날 사전이 필요해졌다.
  • 안산신문
  • 승인 2021.10.0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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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분야가 세분되고 전문가들이 자신의 분야를 연구하다가 생긴 지식을 사전으로 만들어 펴내는 경우가 많다.

   『나는 교과서와 법이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나는 현실 세계의 누추한 면을 다루는 신문과 잡지 등 정기간행물에 대해 대단히 우호적이다. (중략) 나는 매일 책과 정기간행물들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밑줄 그은 부분을 내 나름대로 분류한 주제별로 컴퓨터에 입력하는 일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 그걸 정리해 묶어 낸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곧 내 생활인 것이다. 나의 이런 생활이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 -강준만의 책 ‘나의 정치학 사전’의 머리말에서 옮김-

   어느 날 사전이 필요해졌다.


   사전을 처음 대한 것은 중학교 때 ‘자전(字典)’이었다. 자전은 주로 ‘옥편(玉篇)’이라고 불렀는데 한자를 찾고 그 뜻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일종의 사전이었다. 그전부터 아버님이 쓰던 것으로 중학교 2학년이 되자 한문을 교과과목으로 배우면서 자전이 필요해져서였다. 이렇게 볼 때 필자가 제일 먼저 사용했던 ‘사전(辭典과 事典은 의미상 약간의 차이가 있으니 그 차이는 독자 여러분 직접 확인하기 바람)’은 자전이 분명하다. 그 시절에 친구를 따라가 영등포 시장 주변에 있던 헌책방에서 영어사전(영한사전)을 구했는데 이것의 나의 두 번째 사전이었다. 두께도 얇고 단어의 수도 적은 것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던 시절이 아니어서 친구가 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사전을 사러 갈 일이 없었으리라. 더군다나 영어에 흥미가 없었으니. 그래서인지 자전을 열어본 기억은 있어도 영어사전을 펼쳐본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영어사전 구매를 목적으로 헌책방을 다녔다. 두껍고 인쇄와 편집이 잘 된 영한사전, 한영사전, 영영사전을 사기 위해서다. 지금도 필자의 서고에는 이때 산 여러 종류의 영어사전들이 있다.
   그리고 중학생 이상 학생이 있는 집에선 영한사전은 필수품이었다. 사람들이 사전은 굳이 새 사전을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선지 아니면 돈을 아끼려고 그런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학기 초 헌책방의 베스트셀러는 단연 영한사전이었다. 이땐 거의 새 책에 가까운 헌책을 많이 갖춰놓고 고객을 맞이하였다. 책방에 국어사전이 있었으나 사 가는 것을 목격한 적은 없었다. 새 사전은 입학 선물로 최고의 인기였다. 필자는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고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도 없었으나 잘 알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학교에서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에겐 여러 믿지 못할 다음과 같은 소문이 돌았다. “다 외운 단어들이 있는 페이지는 씹어서 먹어버린대”, “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두 번을 보았대” 가까운 친구들과 우리도 한번 먹어볼까 하고 한쪽을 찢어서 입안에 넣었다가 금방 뱉어내었던 적도 있었다. 물론 단어를 다 외우지도 않고 했다.
   대학원생이 되어서 분류학을 공부하면서 영어사전에도 나오지 않은 전문용어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단어들을 우리말로 대체하는 것도 엄청 어려웠다. 생물들의 형태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특히 그랬다. 예를 들면 어떤 동물이 가시를 많이 가지고 있을 때 “가시는 가늘고 긴 가시인데 끝으로 가면 뾰족해진다.”라고 서술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모든 형태를 다 이렇게 풀어쓸 수는 없어서 적절한 단어 찾아야 한다. 앞의 가시 설명인 경우는 ‘테이퍼드(tapered)’라는 딱 맞는 단어가 있다. 그래서 사전과 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학교 영어를 처음 대할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후회하곤 하였다. 이때 연구소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 ‘생물학 용어 사전’과 ‘수산학 용어 사전’이었다. 점차 사전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용어나 단어의 뜻보다 좀 더 깊이가 있는 배경이나 생성 역사 등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졌다. 당시에는 백과사전 붐이 일었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Encyclopedia Britannica)’의 국내 판이 인기를 얻을 때였다. 이 사전은 18세기 처음 선보인 세계 최초의 백과사전으로 2010년 15판이 나왔으며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백과사전이다.

필자의 책장 여러 곳에 이렇게 사전류를 모아 놓은 곳이 있다. 한때는 자주 꺼내 들었으나 지금은 수집에 더 의의를 두고 있다.

1980년대 초인 것으로 기억되는데 한 친구가 위의 백과사전을 사라고 강권한 적이 있었으니 그때 관심이 있었더라도 경제 사정으로 그 비싼 백과사전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논문이나 일반 글 쓰는 연습을 하면서 국어사전의 필요성이 여겨져 제대로 된 국어사전을 찾고 있었다. 마침 한글학회에서 1991년에 발간되는 한글 사전이 있다고 하여 다른 사전을 구하지 않고 기다렸다가 샀다. 이 사전은 편찬 기간은 1967~1991년까지 무려 약 25년이나 걸렸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는 “‘현대말’ 3권과 ‘옛말과 이두’ 1권 등 전 4권으로 이루어졌다. 한글학회에서 편찬한 ‘큰사전(1957년)’에 우리말의 역사성과 현실성을 반영한 사전으로, ‘큰사전’이 발간된 지 10년만인 1967년부터 편찬이 시작되었다.”라 소개하였다. 또 1992년 즈음에 한 신문을 보니 국내 출판사 ‘동서문화’에 의해서 백과사전 30권짜리 전집이 출간된다고 하여 가격도 브리태니커보다 1/5 이상 저렴하고 국내 출판사의 것이라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새 전집이라 필자에게는 매우 비싼 것이었으나 무리를 해서 10개월 할부로 구매하곤 틈만 나면 열어보면서 자랑스러워했다. 이 두 질의 사전전집은 단어의 개념과 의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지금은 컴퓨터에서 다 검색이 되어 볼 기회가 없으나 가끔 옛 생각을 하면서 꺼내 볼 때도 있다.
   동물분류학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용어의 개념 정리와 각 단어 중요한 의미를 익히는 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단어의 다양성을 다 알지 못해 사전을 더 가지고 싶어 했다. 그러니까 단어들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 바로 찾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대부분을 컴퓨터 검색으로 해결되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분화된 사전이 더 필요하다는 인식도 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생태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생태학 사전이 필요한 것처럼 무척추동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겐 무척추동물 사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동물학 사전으로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작은 생물들과 그들의 부속지에 대해 이해하고 싶을 때가 많았으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사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단행본들이 책장에 40여 권이 보였고, 서재를 다 뒤지면 아마 10여 권 이상이 더 나올지 모른다. 현재 소장하고 있는 책 중에는 ‘표착물사전(漂着物事典)’, ‘한국 괴물 백과’, ‘해양생물 대백과’, ‘천하무적 잡학사전’, ‘동심 언어 사전’ 등 독특한 것들도 꽤 있다.
   강준만 교수는 앞에서 언급한 ‘나의 정치학 사전’ 외에도 ‘한국인을 위한 교양 사전’을 펴냈다. 그는 머리말에서 “한 우물을 깊게 파는 것이 아름답다는 ‘전문화 이데올로기’ 탓인지 도무지 옆을 보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너무 많다.”라고 적었다. 필자는 사람을 크게 ‘한 우물만 파는 사람’과 ‘잡다한 일에 관심이 많아 한 우물을 파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사전을 수집하거나 사전에 집필하는 사람은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현대에 와서야 후자 부류에 속하는 여러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통합 능력을 갖춘 이들이 대우를 받고 일들이 늘어나고 있어 특이한 사전이 출판이 늘어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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