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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 이야기<22>우리 말과 글에 관한 관심이 수집으로 이어졌다.
  • 안산신문
  • 승인 2021.10.1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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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종류의 우리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이다. 수집된 것은 이보다 많으나 사무실 책장에 있는 것만을 꺼내 촬영하였다..

   『지난 천년 동안 우리 겨레는 끊임없이 남의 나라의 말과 글에 우리 말글을 빼앗기며 살아왔고, 지금은 온통 남의 말글의 홍수 속에 떠밀려 가고 있는 판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이 나라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치는 일조차 아예 그만두었다. 날마다 텔레비전을 쳐다보면서 거기서 들려오는 온갖 잡탕의 어설픈 번역체 글말을 듣고 배우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이오덕의 책 ‘우리글 바로 쓰기’의 머리말에서 옮김-

   우리 말과 글에 관한 관심이 수집으로 이어졌다.


   한글에 관한 관심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우리 친구들은 공부는 하지 않고 노는데 더 집중하고 있었다. 함께 어울리는 친구 중에는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라고 했음)와 중학교 친구도 있었고, 고등학교에서 만난 친구까지 모두 네 명이었다. 두 명이 노래를 잘하여 고등학생인데도 불구하고 콘서트를 한국일보사 강당에서 열 정도였다. 필자는 노래를 못하니 기획하는 일을 맡았는데 우리 팀과 친구 듀엣의 이름도 필요했다. 대중가요계에서는 포크 송 바람과 함께 외국 이름을 가진 듀엣이 많이 등장했다. 그런데 왠지 외국어 이름을 쓰는 것이 싫었고 우리 말 이름을 찾고 싶었다. 며칠 동안 끙끙대며 사전도 보고, 책도 뒤지고 해서 ‘강과 산’이라는 뜻을 가진 우리 말인 ‘가람과 뫼’라는 이름 찾아 친구들 동의를 받아 이름으로 했다. 나중에 한글학회에서 매년 개최하는 예쁘고 고운 우리 말 이름 경연대회가 있었는데 이 이름으로 참여하여 우수상을 받았다. 이것이 우리글에 대한 사랑의 시작이었다.
   대학에서도 글에 대한 욕심이 있어 국문학과를 주변을 맴돌았고 선택과목 대부분을 국문학과 과목으로 선택하였었다. 국문학과 과목 성적이 생물학과의 것들보다 좋았다. 국문학과에서는 교수님들이 과 학생들을 나무랄 때 다른 과 학생보다 못하냐는 지적을 하곤 하여 국문학과 학생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보다는 교수님들과 더 친하게 되었다. 그중 우리 말과 글을 연구하는 한 교수님과의 인연은 더 이어졌다. 대학원 동물학 연구실에서 무척추동물의 분류학을 공부하였고, 석사학위 논문 대상은 갯지렁이류 가운데 ‘비늘갯지렁이과’였다. 이들 해양생물에는 우리말이 전혀 없어서 논문을 쓰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우리말 갯지렁이 이름을 작명을 해야 해서 교수님의 조언을 받으러 다녔다. 하루는 교수님이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으면 꼭 우리말 이름을 지어라. 그러면 내가 이름을 지어주겠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말 이름 사용자가 많아지고 있다고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우리 두 아이는 우리말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름은 교수님 친구분인 배우리 선생이 지어주었다. 안타깝게도 필자가 석사를 마친 얼마 후에 교수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다.
   한국의 해양생물에 대한 우리말 이름에 대한 애정이 이어졌었지만, 막상 기록으로 남아있는 우리 바다 생물들의 이름이 거의 없어 너무 아쉬웠다. 자산어보(玆山魚譜)나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에도 한자 이름만 있을 뿐 당시 어민이나 평민들이 썼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나중에 원로학자 한 분에게 들은 이야기는 조선 말기에 실학에 들어오면서 중국식 생물 이름이 자리를 잡았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는 일본식 이름이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순우리말 생물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후 우리나라 연체동물 전체의 우리말 자료들을 정리한 논문을 내게도 계기가 이때 만들어졌었다. 이렇게 이름에 관한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어도 글은 늘지도 않았다. 직장(연구소)에서는 딱딱한 글만을 썼고, 말단 연구원인 필자의 업무 중의 하나인 보고서에서 나온 한글 단어를 한자로 바꾸는 일도 하였다. 옥편을 들고 일일이 수작업을 하여 엄청 답답하였으나 불만을 토로하지는 못했다. 한번은 학회에 한글 논문을 제출하였더니 편집위원 중에 한 분이 친절하게도 다 고쳐주었다. 한자도 넣고 일본식 형식에 문장을 이어 길게 만들어주었다. 평소 존경하던 분이라 어쩔 수 없이 대부분 수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책 표지를 비닐로 덮어서인지 출판된 지 45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깨끗하다. 깔끔한 디자인 지금 보아도 세련되었다.

   그런 주변 분위기에서 글을 따로 쓰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하면서 나름대로 글 쓸 준비를 꾸준히 하였다. 한편으로는 과학지식을 일반인들이 잘 이해하도록 써서 출판하는 것도 과학자의 사명이라는 생각하는 연구소 내 젊은 과학자들과도 어울렸다. 필자도 그 점에 크게 공감하였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대중적인 과학서적들이 출판되어 인기를 얻었다. ‘웅진문화’에 펴낸 ‘아시모프의 생물학’ 등 과학시리즈가 대표적이었다. 이어서 다양한 과학서적들이 출판되었다. 우린 가끔 모여서 직접 출판사를 만들자며 꿈을 꾸기도 했다. 글에 대한 애착이 컸지만, 별도로 학습할 기회가 없었으므로 관련된 책을 수집하는 것으로 해소하였다. 그 시절에 구매한 책으로는 가장 자주 본 책은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쓰기(1989년 한길사 출판)’와 같은 출판사가 1992년에 펴낸 ‘박용수’의 ‘우리말 갈래사전’이다. 후자의 머리말을 보자. “언문이란 천대에 짓눌려 우리의 생활용어권으로부터 소외당해 오는 동안 잊혀지다시피 되어있는 참 민중어를 찾아내고, 사대부의 한문 숭상 취향으로, 또 이들 사대부의 후예들에 의해 제정된 ‘표준어’의 울타리 밖으로 내몰린 우리 바탕말을 불러들여서 (중략)”라며 우리말의 사라짐을 크게 통탄하고 있었다.
    서점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곳에서 산 책 중에 제일 아끼는 책은 1970년대 초 ‘현암사’에서 내어 논 ‘박목월’의 ‘문장의 기술(文章의 技術)’이다. 어느 헌책방에서 구매한 것은 분명하고, 날짜를 속표지에 1977년 4월 4일로 적어놓았다. 44년이나 가지고 있는 책이다. 지금 보아도 편집이 잘 되어있고, 표지디자인도 참 좋다. 좋아하는 다른 한 권은 ‘배우리’의 ‘고운이름 한글이름(해냄출판사, 1986)’이다. 가끔 상호나 기관의 이름을 우리말을 지어 달라고 요청을 받았을 때 참고를 했을 뿐만 아니라 저자의 한글 중심사상에도 감복해서다. 또 이렇게 수집하다 보니 잡지나 잡지의 부록에 나온 글쓰기 관련 자료도 틈틈이 모아두었더니 몇 편이 된다. 이젠 글 쓰는 일이 많이 늘어났지만, 수집한 책을 충분히 익히지 못해 늘 아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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