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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 수집기<31>해양환경보전이 연구의 목표가 되다.
  • 안산신문
  • 승인 2022.02.0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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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 디스커버리 센터’는 현재는 ‘마린 앤드 프레쉬워터 디스커버리 센터(Marine and Freshwater Discovery Centre)’로 이름이 바꾸었으며, 장소도 항 인근에서 스완 베이 해변으로 옮겼다. 사진의 건물은 연구소이며 이중 부분에 센터가 있다. 연구소는 빅토리아주 수산청 소속이다.

   『인간은 역사적인 책임은 인간을 계속해서 자연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다른 인간들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게도 사물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그것은 자연과학의 시대에는 자연 전반의 보전에 대한 책임으로까지 확대된다. 동물과 식물, 천연자원과 수돗물, 그다음에는 기후에까지 이르는 책임을 책임의 규정에서 제외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인간적인 책임의 본질을 애초부터 오인하고 있는 셈이다.』 - ‘클라우스 미하엘 마이어-아비히’가 지은 ‘자연을 위한 항거’ 중 ‘게오르그 피히트’의 말 가운데 일부 -

   해양환경보전이 연구의 목표가 되다.

   호주에서 일 년간 지내면서 느낀 것은 당연하지만 학문의 연구가 인류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전문가와 활동가들은 해양생물학을 배우고 연구하는 주된 목적은 해양생태계를 보전하는 일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환경교육에 헌신하고, 일반인 중에서도 그 일에 봉사하고 있었다. 앞의 연제에서 언급한 빅토리아주 해양연구소 구역 내에 있는 ‘마린 디스커버리 센터(Marine Discovery Centre)’는 바로 그런 이들이 모여 활동을 하는 해양환경교육 기관이었다. 호주에 도착한 것이 1995년 2월 말이었는데 그곳은 한여름이었다. 도착 후 짐을 정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지역 소식지에서 센터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있는 것을 보았다. 바로 신청서를 만들어 집이 있는 토르퀘이(Torquay)에서는 차로 약 30분 거리의 퀸즈클리프(Queenscliff)에 있는 센터에 접수하였다. 그런데 접수처에 있는 분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동양인이라는데 흥미를 느꼈고, 약간의 경력과 지원 이유를 적은 접수서류에 붙인 사진을 보고 깔깔 웃었다고 하였다. 양복에 차렷 자세로 정면을 바라보는 무표정한 ‘여권 사진’이 신기했던 것이었다.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우편으로 합격을 통보해 주었다. 일주일간 훈련을 받는데 3박 4일은 합숙훈련을 하며, 훈련 후 일 년간 주로 주말에 봉사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물론 이 봉사 기간은 광고에도 적혀 있었었다. 역시 훈련을 시작하는 날 알게 되었지만, 봉사하는데 경쟁률이 5대 1 이상으로 높았다. 재미있었던 것은 필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가지고 센터의 간부들 간에 논란을 거친 것으로 마흔이나 되는 외국인을 훈련을 시켜야 하는가였는데 해양생물학자라는 점을 들어 붙여준 것 같았다. 센터 책임자와 실무자들은 대개 30대들이었고, 응모자들 20대의 대학생들에 두세 명의 30대 초반의 젊은 동네 아저씨와 주부들이었다. 모두 10명 정도인 것으로 기억된다. 훈련 첫날에는 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맡은 일을 소개하고 하는 일을 직접 보여 준 오리엔테이션을 하였고, 다음 날부터 강 훈련이 시작되었다. 낮에는 센터 내의 업무, 즉 센터 내부를 청소하고 입장료를 받는 일에서부터 수족관 내의 생물들의 먹이를 채취하는 일 등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다양한 해양환경교육 기법을 알려주고 실습하는 방식으로 교육 훈련을 하였다. 밤에는 지역의 전문 학자를 초청하여 해양학과 지역 해양환경의 특성 등의 강의로 들어야 했다. 
  어떤 날 낮에는 카약을 타고 지역의 환경을 모니터링하고, 또 다른 날에는 배를 타고 선상에서 생물을 채취한 다음 학생들에게 어떻게 보여 주고 강의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또 모래사장에서 실물 크기의 고래를 만들어 바다의 광대한 크기를 상상하게 만들고, 해변에서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 예술작품을 만드는 가상 경연대회도 하였다. 상당한 체력이 필요한 일들인데 저녁 후 세 시간 정도 강의까지 들어야 하니 밤이 되면 녹초가 되었다. 합숙하는 기간에는 모든 훈련생이 한 집에서 잤는데 최소한의 생활비를 주었는데 그것으로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아침과 저녁 식사는 돌아가며 담당하였는데 필자는 볶음밥을 선보여 큰 인기를 얻었었다. 점심은 동네 햄버거 가게 등에서 싼 음식을 사서 먹었다. 훈련 기간에는 종종 실습도 하는데 예를 들면 직원들이 하는 일을 대신하였다. 하룻밤에는 강의 대신에 배운 지식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연하는 과정을 거쳤다. 마지막 날인 주말에는 단체로 온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환경교육을 시행하는 것이 마지막 훈련이었다. 그리고 일 년 동안 봉사할 수 있는 날을 기록해서 제출하는 것으로 끝났다. 수료하는 날은 바비큐에 맥주 파티에 열었고, 이 파티에는 센터 후원자들과 강사들 그리고 해양환경교육 전문 출판사 사장 등이 참석하였고, 파티 준비와 일은 모두 직원들이 해주어 훈련생들은 즐기기만 해도 되었다.

해양환경교육 자료는 종류로만 보면 국내에서 제일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모두 정리를 하면 책장으로 두세 개는 넘을 것이다.;

필자가 일생 받은 교육 중에서는 이 환경교육이 가장 훌륭한 교육이었고, 필자에겐 인생관과 연구 철학을 바꾼 일종의 사건이기도 했다. 환경교육은 물론이고 서식지, 특히 습지복원 그리고 해양보호구역과 생태관광의 중요성도 이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귀국 후에 근무하던 연구소에서 하였던 모든 일을 이 일주일 동안 배운 의미와 정신으로 재편하였고 필자의 연구실 출입문에는 해양환경보전 연구실(Marine Conservation Laboratory)라는 문패를 달았다. 그러니까 디킨 대학에서 배운 유전학은 지식이 되었고, 센터에서 봉사하며 익힌 일들은 일생 과업이 되었다. 운명이었다. 귀국 후 처음에는 환경교육부터 시작하였다. 시설이 없어 똑같이 할 수는 없었으나 훈련방식은 유사하게 할 수 있었다. 첫해 강화도를 시작으로 제주도, 남해안 장흥, 시흥 오이도, 동해안 고성 등 5년간 지역을 옮겨가며 하였다. 지금도 전국 해안에서 활동하는 많은 활동가가 이 교육을 수료하였다. 이젠 세월이 많이 지나 다들 50대가 훌쩍 넘었다. 첫 훈련 때에는 호주 센터의 직원들을 초청해서 시범을 보이게 하였다. 그들도 이젠 은퇴할 나이다.
   환경교육을 하면서 보호구역과 서식지복원과 생태관광 연구과제들을 해양에서는 국내 처음으로 시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때 받은 교육의 효과였다. 환경교육에서 책은 매우 소중한 교재였다. 좋은 책에는 적절한 그림과 교육방식이 설명되어 있다. 또 포스터도 책과 같은 기능을 한다는 점도 자연스럽게 알았다. 보호해야 할 서식지와 생물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게 하는 것만으로도 큰 교육 효과를 거둘 수가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호주에 있으면서 아주 많은 환경교육자료를 구했는데 대다수가 책이었지만 그 가운데 포스터와 팸플릿도 많았다. 센터가 있었던 퀸스클리프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스완 베이(Swan Bay)를 끼고 다양한 형태의 서식지를 가지고 있는 관광항이다. 이곳에 여러 개 해양 관련 박물관과 책방 그리고 역사적 유적들이 있어 해양환경교육을 하기에는 이상적인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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