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자유’도 포기한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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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너무 슬퍼서 부정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김옥선씨(가명 48세)에게 친정어머니의 병원비는 그런 것이었다. 심장병 수술로 1천여만원 드는 병원비에 자신은 겨우 10만원만 큰 오빠 손에 쥐어주고 나왔는데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에 통증이 왔다고 했다. 이것이 아침 5시부터 7시까지 상가건물 청소와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식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 옥선씨 삶의 이면이었다. 축의금이나 술값 낼 돈이 없어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렵다는 사람들처럼 그녀도 인간구실을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회사에 다니던 남편이 실직하고 나면서부터 그녀에게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모든 책임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 전세금 빼서 차렸던 낙지집은 망해버렸고 그 충격으로 남편은 중풍에 걸렸다. 지금은 많이 회복됐지만 아직도 거동이 불편해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1백20만원 남짓 벌어오는 돈으로 월세 40만원 내고 남편 약값 10여만원, 전기세·관리비·교통비·식비 등 생활비 50여만원, 큰 아들 학원비 20만원쯤 내고 나면 남은 것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모자란다. 무엇보다 식당 망하고 진 빚 때문에 은행으로부터 빚 독촉을 받을 때마다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고 그런 날은 하루 생활이 엉망으로 뒤엉켜버렸다.


-삶에 힘겨워 마음의 여유 잃어-


옥선씨는 힘들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짐 다 버리고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다고 했다. 그녀는 아이를 고아원에 버리고 도망가는 여자들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견딜 수 없는데, 당장 죽을 것 같은데 함께 살면 더 불행해 질 것 같으니까 동반자살 할 것 아니라면 버리고 가는 거지요.” 그러면서 옥선씨는 자신은 아직 견딜 수 있으니까, 가족에 대한 의무감이라기보다 이생에서 인연 맺은 사람들을 버리면 죄 될 것 같으니까 견디고 있는 것이라 했다. “이것도 마음의 여유가 있으니 하는 말이에요. 이 말도 안 나올 때 그때가 떠나는 때죠”라고 말하고 아마 자신 같은 사람은 떠나는 때가 곧 죽는 때지 싶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무얼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바닷가 근처에서 집 나온 어린애들 몇 명 돌보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그 꿈이 지금 현재로선 너무 멀고 아득하여 청승스럽다고 했다. ‘생존’에 갇힌 힘겨운 삶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개인적인 자유를 그만 포기하고 싶어진 것 같았다. 더 이상을 욕구한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매우 벅차고 힘겨운 일이었고 그런 에너지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큰 회사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비정규직으로 오디오 포장하는 일을 하고 있는 이용섭씨(가명 42세)도 하루 12시간 근무하고 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어 밥 먹고 하자고 반장에게 말했다가 그렇게 불평할 거면 그만두라는 퉁을 맞았다. 일요일도 일하는 그는 아이들과 놀러가 본 적이 아득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예전에 한 적이 있는 오래된 꿈을 꾸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꽃구경 가는 것.’ 그가 처한 조건에서 개인의 자유는 꽃구경 이상을 꿈꾸게 하는 것이 이미 힘들어졌다.


-애들과 꽃구경 가보는게 소원-


남편이 실직하여 올케하고 함께 식당을 차렸던 이순선씨(가명 45세)는 지금 앓아누웠다. 밤 12시 넘어서까지 무리하게 일을 한데다가 그렇게 일을 해도 월급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힘들게 일을 해도 대가 없이 견뎌야 한다는 것은 정말 허망한 일이었다. 그녀는 지금 아무 생각도 안난다고 했다. 꽃구경도 뭣도.


사람들이 앞뒤만 갈 수 있는 1차원적인 선 위에 놓여 있다. 생계문제에서 벗어나야 위 아래로 자유로이 공간을 누리는데 그들은 닫힌 구조 속에 강제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고통은 11차원의 깊이를 헤매고 있다. 노마드족, 이피족 등 무슨 족들이 판을 치고 웰빙을 외치는 ‘개인적 자유의 과잉시대’에 그들만이 개인적 자유의 결핍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글은 경향신문에도 실린 글입니다.

최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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