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신 선생 기념관을 찾아서

상록공원 하늘 높이 떠 있는 두 개의 흰색 애드벌룬은 새로 개축한 「최용신 선생기념관」이 11월 20일, 개관하였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곳은 일본에게 나라를 잃고 암울했던 시기에 조선어(당시의 국어는 일본어였기 때문에 조선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조선의 혼을 불어넣어주는 일과 같았음)를 가르치며, 농촌계몽운동으로 일생을 바친 최용신 선생이 야학활동을 하다가 과로와 영양실조로 쓰러져 27세의 꽃다운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으며 “학교가 잘 보이고 종소리가 들리는 곳에 묻어 달라”는 선생의 유언에 따라 「일리공동묘지(현 일동 818번지 일원)」에 묻혔다가 「샘골(泉谷)교회」가 있는 상록수 공원으로 이장하여 잠들어 있는 곳이다.

공원 경내로 들어서니 과거와는 달리 보도(步道)를 비롯한 경내 경관이 말끔하게 새로 단장되어 있었고 선생의 묘(墓)도 손질이 잘 되어있어서 선생에게 가졌던 민망하고 죄스러웠던 마음이 어느 정도 덜어지는 것 같아 반가웠다.

그리고 허름한 창고 같았던 선생의 유물보관소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의 기념관을 새로 개축했는데, 지하 1층에는 영상실과 전시실이 들어서 있었고 전시실에는 최용신 선생에게 수여된 건국훈장과 심훈의 소실인 「상록수」초본, 당시 사용했던 국어교재, 성경책, 선생께서 학창시절에 손수 놓으셨다는 「무궁화 자수」등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선생이 손수 작사하셨다는 교가를 채보한 악보도 있었다.

지상1층에는 교육실과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시청에서 관리하는 직원이 배치돼있었다. 도우미 안내양은 친절하게도 샘골강습소 교가를 자기의 육성으로 들려주었는데 나라를 잃고 비분강개하는 애잔한 곡이어서 감회가 깊었다.

그 때, 전시실 관람객으로는 나 외에 중년을 훨씬 넘기고 초로(初老)에 들어선 듯한 여인이 한사람 있었는데 그 여인이 “최용신 선생의 기념관으로는 너무 빈약하네요. 그 당시 일제치하에서 학대받던 우리들의 모습과 자기건강도 돌아보지 못하고 야학을 통해 독립운동을 하시던 선생의 모습, 그리고 그 정신을 후손들이 이해하고 존경할 수 있도록 만들 수는 없었을까요? 이렇게 작은 공간에 책 몇 권, 유품 몇 점을 전시해 놓고 기념관이라니? 말도 안돼요.” 자못 분개한 듯이 큰 소리로 말하면서 무언(無言)중에 나의 동의를 구하는 듯 했다.

나 역시 부족한 감(感)을 느끼고 있던 터라 나름대로 보완해야 할 것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다.

첫째, 경내에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마주치게 되는 것이 “운동시설”이다. 그러나 이곳을 단순히 주민들의 쉼터나 운동을 하는 시민공원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세계 어느 곳에도 순국한 선구자를 기리는 추모장소에 운동시설을 설치해 놓은 곳은 없다. 말로만 “애국”을 외치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최용신 선생같이 몸을 바쳐 순국한 분이 몇 분이나 되겠나?

둘째, 운동 시설을 철거 하고 뒤의 언덕을 따라 넓은 동판(銅版)이나 석판(石板)을 병풍처럼 설치하고 그 당시 샘골강습소와 그 일대의 풍경, 일제시대에 고통 받던 우리 민족들의 모습, 그리고 야학에서 글을 가르치는 선생의 모습, 강의 중에 쓰러지는 모습,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선생을 업고 릴레이식으로 수원에 있는 병원까지 달려가는 모습들을 설명과 함께 부조나 조각으로 새겨놓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달리 설명할 필요 없이 선생이 살아오신 길을 알려주고, 숙연하고 외경심이 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참고로 스페인에 항거하다 순국한 “호세 리잘”을 기리기 위한 마닐라의 “리잘” 공원을 참고해 주기 바란다.

셋째, 선생의 동상을 건립해야 한다.

넷째, 주차시설이 필요하다. 아파트와 상가로 둘러 쌓인 이곳은 좁은 골목에 주차해 놓은 주변 상인들의 차 때문에 관광객이나 단체로 온 참배객들의 차를 주차시킬 공간이 전혀 없다.

다섯째, 선생께서 “종(種)소리가 들리는 곳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던 종을 전시실 진열대에 보관할 것이 아니라 종탑에 걸어놓았으면 좋겠다.

여섯째, “샘골강습소의 교가“를 전시실에 배경음악으로 들려주게 되면 분위기가 한결 달라질 것 같다.
일곱째, 학교나 교회에 널리 홍보해서 많은 인원들이 이곳을 찾고, 선생의 유업을 기리도록 했으면 좋겠다.

여덟째, 심훈의 “상록수” 소설책을 재판해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구입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그 외에도 관계당국에서 많은 기획과 조치가 있을 것으로 사료 되지만, “나라를 잃었던 암울한 시대에 샘골 아이들을 「조선의 빛」으로 키우려던” 이곳이 단순한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이곳은 우리 국민들의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적 고향으로, 또 안산 시민들의 마음의 구심점으로 거듭 태어나야 할 곳이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소중하게 가꾸고 보존해야 남들도 소중하게 알아주지 않겠나?」

이재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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