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네 속담에서는 전혀 체온이나 사람 냄새를 느끼지 못한다. 아주 가까운 사촌인데, 논을 샀으면 의당 축하부터 해야 할 텐데 배가 아프다니, 그런 사람이 어찌 낯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랴 싶은 것이다. 그저께가 부활절, 그래더 더 절감한다.

어떤 율법학자가 예수의 속을 떠볼려고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은 가진 것 모조리 뻬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 놓고 갔다. 마침 한 사제가 그 길로 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고, 또 레위 사람도 그러했다.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다가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다음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드리겠소”하며 부탁하고 떠났다. 그러면 이 세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율법학자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사람입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하고 말씀하셨다.

선다 심은 심한 눈보라가 치던 어느날, 네팔 지방의 한 산길을 가고 있었다. 마침 방향이 같은 젊은 동행자 한 사람이 있었다.

눈보라는 사정없이 더 거세지고 추위는 살을 예는데 인적도 민가도 눈에 띄지 않는 외딴 지대가 계속되던 중 얼마쯤 가다가 두 사람은 눈 위에 쓰러져서 신음하는 노인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 이 사람을 같이 데려 갑시다. 그냥 두면 죽고 말 거요”

그러자 동행자는 벌컥 화를 내었다. “무슨 얘길 하는 겁니까? 우리도 죽을 지 살지 모르는 이 판국에 저런 노인네까지 끌고 가다가는 다 죽게 될거요”

사실은 그러기는 했으나 선다 심은 불쌍한 노인을 업고 눈보라 속을 걸었다. 동행자는 벌서 앞서서 가버리고 보이지 않았다.

선다 심은 갈수록 힘들어 견딜 수가 없었지만 무거운 것을 끝까지 참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등에서는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그의 몸에서 더운 기운이 확확 끼쳐서인지 등에 업힌 노인은 차츰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으로 조금도 춥지 않았다. 그렇게 하여 마침내 두 사람은 마을에 이르렀다.
선다 심은 마을 입구에서 한 사내가 꽁꽁 언 채로 쓰러져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바로 자기 혼자 살겠다고 앞서가던 그 동행자였다.

마음이 고와야 옷깃이 바로 선다했던가.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거든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을 배워라」했다.

우리가 진정으로 남을 기쁘게 하려면 상대방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를 바로 알고, 상대방의 의사와 요구를 존중해야 하며, 그리고 또 넓은 이해심과 따뜻한 관심과 인내력과 겸손의 덕이 필요하다 하겠다. 남을 기쁘게 함으로써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남을 기쁘게 하는 일에 인색하게 굴 필요가 어디 있으랴.

간디는 「나의 소원은 모든 사람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이 소원을 실현하기 위해 신과 진리와 인도와 인류에게 봉사했고, 이상을 네루에게 계승했었다.

우리의 위정자들도 그랬으면 좋으련만 계속 눈물을 흘리게만 하고 있으니…

링컨의 평소의 기도는 「내가 이 세상에 살았기 때문에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졌다는 소식을 듣고 죽기를 원합니다」였다고 한다.

이 기도는 자기를 위한 기도가 아니다. 그는 지도자였지 지배자는 아니였다. 지배자는 다른 사람과 싸워 이긴 사람이고, 지도자는 자기와 싸워 이긴 사람이니 영원히 승리한 사람이다. 그러는 내 기도는?

‘이웃 사촌’이란 예나 지금이나 이 얼마나 정겨운 말인가? 날로 삭막해져 가는 오늘의 세정속에선 더욱 그리운 ‘이웃 사촌’ 얼핏 돈이 많아지면 베풀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돈 많은 자가 더 인색하다. 재물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심해지기 때문일까? 재물은 거름처럼 쌓일수록 악취를 풍기지만 뿌리면 옥토를 가꾼다지 않는가?

우리는 이번의 태안반도 기름유출사건 현장에서 본 100만도 넘는 자원봉사자들 말고도 여러 분야에서 자원봉사하는 인간다운 참모습들을 본다. 자식이 버린 노인을 내 몸같이 돌보는 천사들에게서 우리는 영원힌 꺼지지 않는 인간의 값진 삶의 진면목을 배운다.

모두가 따듯해야 나도 따뜻해지는 법. 그래서 세상은 살만한 곳.

카네기는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그 막대한 부를 세계의 요소 요소에 뿌렸다. 그리하여 그는 세계인의 이웃으로 길이 남아 있다. 나도 부는 아니지만 소장품을 정리하여 그의 흉내라도 낼까 마음 다짐다.

이기진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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