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님의 양치질 - 안산신문

“살다보니 별소리를 다 듣겠네.”

사람들이 이 말 저 말 들으며 살다가 하도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을 때 하는 말이다. 그러한 별소리가 하도 많아서 이제는 사람들이 어처구니없어 하지도 않지만 2008년 9월에 내가 들은 말 중에 가장 어처구니없는 말은 지난 12일 온갖 언론매체가 총동원하여 톱뉴스로 보도한 ‘양치질’ 이야기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현재 와병 중인 것은 분명하나 직접 양치질을 할 수 있을 정도인 것으로 12일 알려졌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김정일 위원장이 혼자 양치질을 할 정도의 건강 상태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애벌레가 사서삼경을 외운대도 이렇게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대체 양치질이 왜 그렇게 중요한 사건이 되어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야 물론 양치질을 한 사람이 동북아 안보의 중대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북한 최고 권력자 ‘장군님’이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첫째. 이런 일은 국가 전문기관이 알면 되는 일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국방부, 통일부, 국정원도 있고 그 외 북한 전문기관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국가의 안위를 위하여 양치질보다 더 자세한 것까지도 알고 있어야 할뿐 아니라 유사시를 대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민방위 정신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고 왜 온 국민이 김정일 위원장의 양치질까지 챙기게 하는지 모르겠다. 혹시라도 국민을 긴장시킬 목적이라거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목적이었다면 더욱 실수한 것이다. 가뜩이나 세계금융위기 여파로 긴장하고 있는 국민들을 위하여 정부와 언론은 좀 더 심사숙고했어야 했다.

둘째, 이런 일은 남북관계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김정일 와병설이나 사망설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듯 반응하는 것은 너무나도 소아적 접근방법이다. 그 후에 일어날 정세변화나 안보대책은 이미 서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잖아도 식량문제와 테러지원국 해제 등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그들을 자극해서 얻을 것이 무엇일까. 북한은 우리가 통일해서 더 나은 미래를 함께 건설하고 싶어 하는 동족이며 김정일은 그들이 숭배하는 ‘장군님’이다. 우리가 재미있다는 듯 혹은 기다렸다는 듯, 무슨 수술을 받았느니 스스로 걸어 다닐 수 있다느니 더군다나 혼자서 양치질을 할 수 있다느니 없다느니 대서특필 하는 것은 참으로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지난19일 판문점회담에서 현학봉 북측 대표는 “우리나라 일이 잘 되지 않기를 바라는 나쁜 사람들의 궤변”이라면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광풍이 불어오고 하늘땅이 열백 번 뒤집혀진다 해도 김정일 장군님만 믿고 따르며…” 운운하는 그들을 자극하는 것이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알고 침묵하며 사태의 추이를 신중하게 바라보았던 미국이나 일본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셋째, 우리 서민들에게는 ‘장군님의 양치질’이라는 강 건너 불보다 발등의 불을 더 뜨거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는 양치질도 뉴스가 되는데 치약 살 돈도 없는 나는 뭔가 하는 국민들도 많았을 것이다.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는 고통을 끌어안고 몸부림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의 일을 마음으로나마 대서특필할 수 있는 정부와 언론을 우리는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대사라 할지언정 민초의 이야기를 기록할 지면이나 영상이 지상 어디에 있으랴마는 유명한 정치가나 무명한 독거노인이나 똑 같이 우리 국민이고 우리가 기억해줘야 할 인격이다. 카메라의 앵글이 공평하게 돌아가고 혼자 양치질 할 만큼의 뉴스가 보다 광범위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기득권자들이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소수의 영광을 살아주며 그들의 그늘에 서식하는 비민주적 삶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혼자 비누질을 할 수 있는지, 수건으로 얼굴을 닦을 수 있는지 뉴스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김정일 와병설과 회복설은 다시 뜸해졌다. 이제 특종에 목마른 언론과 그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정부는 더 이상 아는 척 하지 말고 모두를 배려하는 넓은 품이 되어 주기 바란다.

/그사랑 교회 목사

최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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