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대계 짜는 행정구역 통합 되어야


▲ 류홍번 안산YMCA 사무총장

최근 추진되고 있는 행정구역 통합논의와 상황을 지켜보면 마음이 씁쓸하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정책의 밑바닥 수준을 확인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다. 시.군통합의 주체인 주민의 의사와 선택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정부와 단체장의 일방적 의지와 추진계획만 존재한다.

통합 상대 도시의 의사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통합 대상으로 지목된 지역은 주민들이 찬반으로 갈려 심각한 갈등과 분열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는 물론이고,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나 배려도 없다. 단지 '큰 지역'이 '작은 지역'을 집어삼키는 형태의 약육강식 논리만 행정구역 통합 논의과정을 지배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행정구역 통합인지 근본적인 회의와 의문이 든다.

행정구역 통합은 단순히 구역이나 도시경계의 통합이 아니다. 지역의 정체성을 바꾸는 근본적인 대사다. 수십년간 살아 온 도시이름이 바뀌고, 하루 아침에 다른 지역 시민이 되는 것이고, 우리 스스로가 자부심을 가졌고 아이들에게 가르쳐 온 지역의 역사와 뿌리가 바뀌는 것이다.

나아가 학군 등 교육여건이 달라지고, 행정 및 복지 서비스 체계가 변화하는, 생활의 여건과 질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개인으로 보면 가족과 족보, 환경이 완전히 바뀌는 일이다. 신중하게 판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는 작금의 행정구역 통합 논의에는 통합에 따른 변화나 혼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나 진정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새로운 비전과 발전성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나 고민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찬반 여론만 존재한다. 권력자들의 전형적인 정치놀음이고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의 산물이다.

정부와 행정통합론자들이 통합의 근거로 삼는 행정의 효율성은 정말 있을까. 최근에 가장 체계적으로 행정구역 통합의 효과성을 분석한 것으로 평가받는 한양대 유재원 교수는 ‘시군 통합의 효과에 대한 경험 분석’ 논문에서 지난 95년 실시된 41개 시군통합을 95년을 전후로 12년씩 총 24년을 시계열로 행정효율성을 분석해 발표했다.

이 발표논문을 보면 '행정적 효과', '재정적 효과', '경제성장 효과' 등 3개 부문 8개 세부지표 모두에서 통합효과가 ‘전혀 없다’는 게 유 교수의 연구결과다. 그는 그 이유로 현행 행정구역 통합이 ‘행?재정 불이익 금지의 원칙’으로 인해 구조개혁이 없는 단순통합이라는 점, 정부의 교부금에 절대 의존하는 자치단체의 구조적 특성상 행정구역 확대가 경쟁력 강화의 새로운 유인 요소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지방체제와 행정구역 개편의 구조적인 변화없이 행정효율성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행정구역 개편은 행정효율성 강화는 고사하고 매우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정부의 행정구역 통합은 시군구를 인구 100~150만 규모의 광역시로 확대하고 광역 시도를 폐지하는 1계층 행정체계로의 개편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행정체계 개편은 ‘광역은 더욱 확대하고, 기초는 더욱 작게’하는 세계적 추세, 즉 도시경쟁력 시대에 정면으로 역행해 조처다.

그 결과는 지역의 경쟁력은 물론 국가경쟁력 자체를 약화시킬 게 뻔하다. 둘째, 행정체계의 권한과 기능에 대한 조정 즉 분권과 자치는 배제된 채 단순히 구역통합의 의미 이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셋째,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해체되고 제주도로 통합된 제주특별자치도 사례에서 보듯 단순 행정구역 통합은 오히려 구역과 인구의 확대로 주민 생활상의 문제나 민원에 대한 행정서비스 대응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시민의 불편과 불만만 훨씬 키운다는 점이다.

따라서 행정구역 통합에 따른 부작용과 문제점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시군통합 논의와 추진계획은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행정구역 통합인지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지역은 크고작은 의미에서 행정구역 개편이 필요하고 절실하다. 상호보완적이며,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그래서 도시의 백년대계를 꿈꾸고 준비할 수 있는 행정구역 개편이 되기 위한 연구와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과 시민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자율적이고 책임있게 결정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행정적 지원과 사회분위기 형성, 나아가 결정까지의 긴호흡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이것이 행정구역 통합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우리의 이런 기대가 한낱 메아리로 그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류홍번 안산YMCA 사무총장 hong357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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