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희규 안산1대학 사회복지과 교수

유난히 추운 겨울을 보내고 봄이 오는 길목인 며칠 전 폭설은 어떤 사람에게는 고통을 어떤 사람에게는 즐거움을 줬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항상 모든 사람을 만족 시킬 수는 없다. 노자의 도덕경 天地不仁(하늘과 땅은 결코 인자롭지 않다)이라는 말처럼 하늘과 땅이 인간의 욕심대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해서 억울해 할 일이 아니다. 원래부터 천지는 인자하지 않았으니 인간은 당연히 변화에 순응하는 마음을 가져야 마땅하다.

또 한번 맞는 계절의 변화에 감사하며 봄의 길목에서 몇 곡의 노래를 새겨볼까 한다. 몹시 춥고 눈이 많이 왔던 며칠 전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기들과 산행을 했다. 정상에 오른 친구들이 정상의 서슬퍼런 추위에 놀라 아직은 추운 겨울이라고 투덜거리니 한 친구가 그래도 얼음 밑에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한다. 그 말을 들어선지 산 아래에 광활한 들판위 하얀 눈이 쌓여 있는 풍광에 시인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 겨울 논 >

                                               장석홍


밑둥만 남아 있는 벼가 논을 지키는데

새들도 오지 않는 비어 있는 듯 차 있는

논두렁에 한 그루 미루나무, 지는 해를 바라본다.

겨울 논 솜이불을 덮어주니 숨죽이다

따뜻한 날 반갑게 맞이하려 기다리며

말없이 그 속에다 품은 채, 눈 덮인 빈 겨울 논

눈은 따뜻한 봄날 싹 틔울 날을 기다리는 모든 생명을 솜이불처럼 덮어주면서 인내로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기다린 봄날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온다. 그것도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따라서 소리도, 소문도 없이 와서 밝고 활기차게 온 세상을 축복으로 만든다.

봄은 세상 만물뿐만 아니라 우리 사람들에게도 웅크리지 말고, 무거운 외투를 벗어버리고, 활발히 움직이라 한다. 특히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봄은 정말 축복의 계절이다. 새로운 신입생들은 늘 교정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그들을 맞이할 생각만으로도 설렌다. 젊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기도 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기에 인생의 봄인 그들이 부럽다.

계절의 봄은 봄비와 같이 온다. 아니 봄비가 데리고 온다.


               < 봄 비 >

                                               장석홍


봄비는 묻지도 않고

소리 없이 찾아와서

키가 작은 들풀이나

건장한 나무거나

몸으로 얼굴을 부비며

푸른 눈을 뜨게 하네

봄비는 바람 따라

정처 없이 흘러가다

단단한 아파트 숲

돌맹이를 만날 때면

스스로 몸을 부수어

흙속으로 엎드린다

봄비는 스스로 찾아오고 온몸으로 ‘키가 작은 들풀이거나 건장한 나무거나 몸으로 얼굴을 부비며 푸른 눈을 뜨게’한단다. 시인의 말처럼 정처 없이 유랑을 하다가 ‘아파트 숲이나 돌맹이를 만날 때면 스스로 몸을 부수어 흙 속으로 엎드’리는 봄비는 사람으로 말하면 달관의 경지에 이른 자다.

그렇다 봄이 다시 오듯이 사람도 젊음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달관의 경지는 아니더라도 욕심을 비우고 즐길 줄 알면서 보람된 일을 꾸준히 하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헤아려 본다.

내 삶의 봄날을 오래 누리기 위해 토요일에는 고교 동기들과 마라톤을 하고 목요일에는 북을 치며, 성가대 활동 상담봉사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얼마 전엔 합창대회도 참가했다.

노인복지를 전공하여 가르치다보니 나의 노년의 삶도 다시 봄이 오도록 더 한층 의미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깊어지는 봄이다.

임희규 안산1대학 사회복지과 교수  webmaster@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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