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 안산신문


▲ 박규채 논설위원

“사랑하는 나의 외손자 외손녀 호선아! 아라야! 어느덧 너희들이 대학생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기에 ‘꿈’ 애기를 해주련다.”

‘미국의 부호 록펠러가 어느 호텔에 묵고 있을때, 서비스를 하던 종업원이 록펠러에게 팁을 요구하였단다.

록펠러는 규정대로 숙박료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15불을 주었는데, 그것을 받아 든 호텔보이는 문을 나가면서 이렇게 투덜대었다. “야… 미국 최고의 대부호가 쩨쩨하게 15달러가 뭐야!”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록펠러가 소년을 불러 세워 이런 값비싼 충고를 해주었단다.

“이봐, 젊은이! 나는 물론 자네 말대로 미국 최고의 부자지. 그래서 나는 지금이라도 자네에게 100달러 이상의 팁을 줄 수도 있지, 하지만 규정 이상의 팁을 주는 순간부터 나와 자네의 정상적인 관계는 깨지고 말지. 자네는 호텔 서비스맨이라는 당당한 지위로부터 적선을 받는 거지로 전락하게 되고, 나는 동정을 베푸는 자선가가 되는거야. 왜 당당한 직업을 가진 자네 같은 젊은이가 거지로 전락하려고 하는가! … 사실상 나는 그 동안 자네를 눈여겨 보아왔네, 언제나 싱글벙글 웃고 고된 일을 척척 해내는 그 태도가 좋아서 나는 오늘쯤 자네를 우리 회사에 특채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고, 조금 전까지 자네에게 가장 어울리는 직책은 무엇일까, 그 점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판에 가서 일이 깨졌군. 잘 가게.”

그때 록펠러로부터 뼈아픈 충고의 말을 들으며 푼돈에 해당하는 팁을 욕심내던 소년은 늙을 때까지 그 호텔을 못 떠났다는 일화가 있단다.

꿈은 자존심을 낳고 자존심은 사람을 분발하게 만든단다. 이름하여 ‘철가방’이라는 중국집 배달통을 든 소년은 겉으로 보기에는 다 비슷하고 초라해 보이지만, 그러나 가슴속에 어떤 꿈을 간직 하느냐에 따라서 그 배달통이 훌륭한 근로의 표지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란다.

김성수군, 지금은 세인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겠지만 김성수군은 그 옛날 1985학년도 학력고사에서 312점으로 당당히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합격한 소년이었단다.

그는 전직이 중국집 배달원이었단다. 전남 해남이 고향인 그는 언뜻 보면 남들과 똑같은 중국집 배달원에 지나지 않았지만, 눈에 띄는 한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자장면을 배달하든 탕수육을 배달하든 반드시 철가방과 함께 책을 들고 다녔다는 사실이었단다.

아파트를 오르내릴 때에는 엘리베이터 속에서 얼른 뒷주머니에 찌르고 다니던 참고서를 꺼내 보았고, 다른 종업원들이 거실에 둘러앉아 고스톱을 칠 때도 그는 윗목에 비켜 앉아 묵묵히 자신의 책 속으로 빠져들어 갔단다. 그는 또한 다른 소년들이 불평하는 소리에도 참여하지 않았단다.

“아, 세상 고르지 못하더라. 오늘 배달간 324동 310호 말이야. 글쎄 그 집은 날이면 날마다 비싼 요리를 시켜 먹는거 있지! 그것도 꼬마 녀석이… 나참, 더러워서. 어떤 놈은 팔자가 좋아 비싼 중국 요리만 시켜 먹고, 우린 죽자고 날라다 주며 고생이나 하고 있으니…” 그리고 얄궂은 훼방을 놓아도 그는 용케 참았단다.

“야, 임마! 중국집 보이면 보이답게 굴어야지… 뭐 꼴 같지 않게 책을 파고 엉뚱한 꿈을 꾸는거야? 대학? 대학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때 만약 김성수군이 거기서 주저앉았더라면 그의 철가방 인생은 결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꿈을 가지고 있었단다. 그리고 그 꿈이 이끄는 대로 보다 높은 세계로 나아갔으며, 부딪치는 모든 장애 요소를 꿈과 이상이라는 남모르는 비밀로 잘 막아 내었단다.

젊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현재 자신이 걸치고 있는 남루한 옷이 나 자신이 디디고 있는 비참한 현실에 개의치 않는 꿈의 세대인 것이란다.

꿈이 없는 젊음은 오히려 위험하기만 하다. 젊음 속에서 불평을 하게 되면 곧장 범죄의 손길에 연결될 수가 있고, 젊음이라는 혈기 속에서 달콤한 유혹에 탐닉하기 시작하면 영원한 쾌락주의자로 굳어지지 않겠는가!

1985년에 서울법대에 진학한 김성수군의 뒷소식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그가 고시에 합격했건 평범한 봉급생활자로 현실에 안주했건 그 뒷소식은 우리가 알바 아니다. 다만 암울했던 1980년대의 그 시점에서 중국집 배달원이라는 그 남루를 훌훌 벗고 관악산 쪽으로 달려간 그 소년의 의지만은 우리 모두가 가슴에 새겨도 좋을 것이다.

박규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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