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근 원 동화작가 (안산화랑초등학교 교장)

지난 해 연말, 한 중학생의 자살로 양파처럼 드러나는 학교폭력의 실상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가정까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되고 말았다. 경기도 여주, 한 중학교의 학교폭력 실상엔 그야말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전남의 한 대학교에서는 조직폭력배가 8년간 대학 총학생회를 장악, 학생회비를 빼돌려 조직 운영비로 사용했을 정도이다. 모자이크 처리된 교내 폭력 동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내 나라 학교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이다.

학교폭력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학교폭력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고 있는 단어가 일진회이다. 일진회는 일본에서 유래한 것으로 흔히 대부분의 학교 내에 존재하는 폭력 조직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1980년대 후반까지 ‘서클’이란 것이 학교폭력 조직의 주류였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 ‘일진’이라는 말이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되었다. 그 당시 교사 시절, 교내 일진 폭력에 대한 실상을 보고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때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대처했더라면 오늘의 끔찍하고 아픈 사태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1997년 6월 29일자 한 중앙 일간지에 ‘학교 폭력 일진회 공포’가 대서특필 되었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구타?갈취?협박 등 폭력 조직에 버금가는 중?고교 폭력에 범죄 단체 구성죄를 처음으로 적용 11명 영장. 일진회 강령은 선배 말과 일진회를 위해 무조건 복종한다. 싸움에서는 무조건 승리한다. 탈퇴 시 줄빠따 100대 이상 맞는다. 선배가 돈 필요시엔 후배는 무조건 상납한다.’

그로부터 수많은 세월이 흘렀다. 학교와 교육부처가 방관하고 있는 사이 학교폭력은 무섭게 잔인할 정도로 진화했다. 학교폭력은 조폭 뺨칠 정도로 날로 흉포화 되었고, 조직화되었다. 자살로 꽃다운 생을 마감한 한 중학생은 1년여 동안 폭행 55차례, 휴대전화 협박문자 수백 개 등에 시달렸다고 한다.

한 학교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학교장으로서 절망하고 분노하며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이제 학교폭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정부부처와 교육기관은 또 땜질 처방식으로 해결책 제시와 함께 세월 타령만 할 것인가?

학교폭력 문제는 가해 학생만 탓할 것이 절대 아니다. 이를 묵인하고 수수방관한 학교와 교육부처, 가해 학생의 부모 등 주위를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할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와 체벌금지로 교원의 교육활동이 위축되고 있는 현실도 다시 한 번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학교가 문제 학생 생활지도와 학교폭력에 방관자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족집게처럼 찾아내어 그에 맞는 처방을 해야 한다.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학생과 학부모 모두 안심할 수 있는 안전한 학교를 만드는 데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이미 12,000명에 달하는 외근 형사를 동원해 ‘학교 폭력과 전쟁’을 벌이고 있고, 특히 집단 폭행이나 금품갈취 등 상습적인 교내외 폭력에 대해서는 구속 수사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연말엔 전국 시?도교육감들이 대구에서 모여 학교폭력 문제에 대한 대책을 심각하게 논의했다. 더 이상의 학교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결의문도 채택하고, 행?재정적 지원은 물론, 제도 개선을 위한 범정부적 차원의 위원회 구성을 적극 건의할 방침이라고 했다.

학교폭력,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학생들의 현실 문제이다. 희망과 꿈을 펴보기도 전에 학교 폭력에 시달려 생을 마감하는 불행한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학교에서는 희망과 미래의 웃음소리가 흘러넘쳐야 한다. 서로 손잡고 우리가 되어 함께 미래로 나아가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학생 생활 안전지도에 모두가 나서야 한다. 생명의 고귀함을 지도해야 한다. 인간 존엄성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학생들의 잘못을 준엄하게 꾸짖는 호랑이 선생님도 많아야 한다. 다시는 이 땅에 학교폭력이란 말이 없도록 모두가 손을 잡아야 한다. 우리의 미래가 달린 절박한 문제이다.

용의 해 임진년이다. 학교폭력만은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용두용미(龍頭龍尾)가 되어야 한다. 학교폭력으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학생들에게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사죄를 하며 고개 숙여 명복을 빈다.

류근원 동화작가 (안산화랑초등학교 교장)  kwroo@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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