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식 법무법인 온누리 변호사

만약 부부 일방이 타방 명의의 계약을 체결할 때마다 엄격한 대리권 수여를 요구한다면, 간단한 계약 체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 민법 제827조 제1항에는 ‘부부는 일상의 가사에 관하여 서로 대리권이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고, 만약 자녀를 위한 10만원 상당의 도서구입 행위가 일상가사의 범위에 포함된다면, 갑의 계약체결은 적법한 대리권한에 따른 것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된다.

여기서 일상가사의 범위는 ‘그 부부공동체의 생활 구조, 정도와 그 부부의 생활 장소인 지역사회의 사회통념에 의하여 결정되며, 그 법률행위의 종류·성질 등 객관적 사정과 함께 가사처리자의 주관적 의사와 목적, 부부의 사회적 지위·직업·재산·수입능력 등 현실적 생활 상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판단’되는데(대법원 1999. 3. 9. 98다46877 판결 참조), 사안은 일상가사 범위에 충분히 포함된다고 보이고, 따라서 을은 아내 갑이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을 명의의 도서구입 계약을 체결하였다고 다툴 수 없다.

그런데 만약 아내 갑이 남편 명의의 집을 매도한 경우라면 어떠할까? 남편은 자신 명의로 체결된 계약의 효력을 부인할 수 있을까? 아내가 남편 명의의 집을 매도하는 일은 일상적인 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계약은 10만원 상당의 도서를 구입하는 것과 달리 민법 제827조 제1항을 이유로 당연히 남편인 을에게도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내 갑은 민법 제827조 제1항에 기해 일정한 대리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기에, 만약 아내 갑에게 그 대리권한을 넘어 남편 명의의 집을 매도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 계약은 민법 제126조에 의해 남편에게도 유효한 계약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갑은 남편 을이 북한으로 피랍된 뒤로 혼자 자녀들을 양육하며 15년간 생활하다가 생활이 어려워 이사를 가면서 주거비와 생계비 마련을 위하여 남편 명의의 부동산을 매도하였는데, 매수인은 이러한 갑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지인이었다.

갑은 이를 매도한 뒤 그 매매대금으로 주거비로 사용하였다고 하자. 이러한 경우 갑이 체결한 매매계약은 유효한가? 이에 대해 현재 대법원은 우선 남편 명의의 부동산을 매도하는 행위가 일상가사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한 뒤 매수인 스스로가 부동산 소유자 을이 북한으로 피랍된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민법 제126조 소정의 표현대리가 성립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례에 따르면 남편 명의로 체결된 부동산 매매계약은 표현대리를 이유로 유효하다고 인정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보인다.

문성식 법무법인 온누리 변호사  moon2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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