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은 음식이나 약재를 파악할 때 그것들이 어떤 지역에서 잘 자라는지와 함께 그 물질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상, 무게와 모양의 형질, 복용하였을 때의 맛과 인체 반응 등으로 성질을 유추하고 어떠한 질병 상태에 사용할 지를 결정한다.

이렇게 각각의 약재를 이해하는 방법을 넓은 의미에서 기미론이라 한다. 예를 들어 숙지황(熟地黃)이라는 약재는 검고 무거우면서 습(濕)한 기운을 많이 담고 있으니 아래로 작용해 신장에 영향을 많이 주며 마른 몸(燥)에 습한 영양분을 공급한다.

마황(麻黃)이라는 약재는 불면 날아갈 정도로 가볍고 녹황색에 탕전하면 붉은 빛을 띠게 되니 간과 비장, 심장에 작용하면서 인체에 쌓인 습(濕)을 피부 밖으로 날려준다고 파악하는 것이다. 이번 칼럼은 약재를 복용하였을 때 맛과 그때의 인체 반응으로 약재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좁은 의미의 기미론이라 할 수 있다.

달고 짜고 시고 맵고 쓴맛은 각각 특별한 성질이 있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먼저 매운 맛은 기운을 활동시켜 열을 내고 화한 느낌으로 발산시키거나 땀을 내어 발산시키는 작용을 한다. 고추나 후추를 먹으면 혀와 배속이 후끈후끈해지고 많이 먹으면 몸이 달아오른다.

그러므로 감기에 걸렸거나 추위를 잘 타고 몸이 냉한 사람은 생강, 계지, 박하 등 매운 맛을 가진 약을 복용하면 대사가 촉진돼 따뜻해지고, 병사(病邪)도 발산시키게 되는 것이다. 반면 위가 약한 사람이 매운 것을 함부로 과량 섭취하면 속이 따갑고 쓰려진다.

쓴맛은 기운을 내려서 제거하는 작용을 한다. 매운 맛이 조직을 풀어헤치는 발산의 성질이 있다면 쓴맛은 오그라뜨리면서 조직을 진정시키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황금, 황련, 황백, 대황, 치자, 초룡담 등 해열과 소염작용이 있는 약은 대개 쓴맛을 가진 경우가 많다.

또한 무엇을 태우면 습기가 완전히 제거되며 결국 쓴맛이 나게 되는데, 쓴맛은 기운을 내려 설사시키면서 습기를 제거하게 된다. 일례로 위장에 습이 많을 때는 꾸물럭거리면서 운동성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때 쓴 음식을 살짝 먹으면 입맛이 돌아오는 것도 쓴맛이 습기를 말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쓴 것을 많이 먹으면 내장의 활동성이 줄어들거나 조직을 마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따라서 냉하거나 수척한 사람은 몸에 좋다고 할지라도 익모초, 케일, 씀바귀 등을 너무 과량으로 섭취하는 것은 좋지 않다.

단맛은 이완시키고, 평정시키는 작용을 한다. 사실 단맛은 기미론적으로도 상하좌우의 날카로운 방향성이 없이 중간 기운인 소화기 계통에 배속된 맛이며, 인체 생리학적으로도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 공급원이 되는 맛이다.

설탕, 교이(물엿), 꿀, 감초, 대추, 용안육 등은 달면서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하므로 몸이 마르고 긴장되어 있는 경우 촉촉이 적시고 긴장을 풀어주게 된다.

역시 단맛도 과량 섭취할 경우 위가 게을러져 입맛이 떨어지기도 하고 소화가 안 되기도 하며 장시간 과량 섭취하면 평안하고 푸근하게 체중이 증가될 가능성도 있다.

짠맛은 딱딱한 것을 연하게 풀어주는 작용을 한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면 숨이 죽으면서 부드러워진다. 이와 같이 짠맛은 오그라뜨리기도 하고, 연하게 하기도 한다.

짠맛은 기본적으로 물에서 온 맛이기 때문에 삼투압으로 물을 머금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물(밑으로 내려가는 성질)과 함께 아래로 내리려고 한다.

만약 짠맛을 과량 섭취하거나 아래로 내리는 쓴맛과 작용한다면 장관에 있는 물을 머금어서 설사시키는 작용이 강해질 것이다. 또한 위쪽이나 중간으로 끌어올리는 단맛이나 매운 맛과 같이 작용한다면 혈관에 머물러서 혈액량을 늘리게 되니 혈맥이 응읍(凝泣)하여 혈압이 높아질 수 있다.

담담한 맛은 물과 같은 맛이며, 인체의 구멍을 뚫어주어 기운을 소통시키는 작용을 한다. 백복령 등 약재 중 가볍고 담담한 맛을 가진 약재들은 주로 소변을 통리시키면서 기운을 돌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신맛은 수렴하는 성질이 있다. 매실이나 레몬처럼 새콤한 것을 먹으면 몸이 움츠려지면서 군침이 돈다. 지금은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겨울에서 봄까지 연탄가스 중독이 많았다.

당시에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몸이 축 늘어지고 어지러울 때 민간요법으로 식초 냄새를 맡게 하거나 시큼한 동치미 국물을 조금 먹였는데,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황당할지 몰라도 이런 톡 쏘는 자극성을 이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음식에도 식초를 뿌리면 잠시 빳빳하고 신선해지면서, 그것을 섭취했을 때 개운하게 정신이 차려지는 것도 신맛의 수렴하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신맛은 늘어지고 이완된 것을 긴장 수축시키면서 수렴시키는 작용을 하되 너무 과한 것은 좋지 않다.

심하게 긴장한 상태가 지속된 사람이 식초와 같은 종류를 과량 복용할 경우 위액분비가 촉진되어 오히려 속이 쓰리게 되거나, 장복하면 혈액순환에 장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재를 복용했을 때, 그것을 뜨겁게 복용했는지 차갑게 복용했는지 와는 무관하게 몸에서 느껴지는 반응이 있는데 주로 한열(寒熱) 반응이다. 더운 성질을 가진 약재들은 대개 기운을 올리면서 대사를 촉진시키는 것들이 많고 찬 성질을 가진 약재들은 기운을 내리면서 대사를 억제하는 것들이 많다.

약재의 이러한 성질들은 알고 보면 각 항목마다 잠깐 언급했지만 우리 실생활에서 자주 이용된다. 즉 가벼운 화상이 있을 때 생감자를 갈아서 붙여두는 것도 감자의 찬 성질을 이용한 것이고, 타박상, 상처 등으로 인해 조직에 염증이 나고 붓고 아플 때 대황이나 치자를 떡으로 만들어 붙이는 것도 이들의 쓰고 찬 성질을 이용한 것이고, 감기에 걸려 으슬으슬 추울 때 생강차는 생강의 따뜻하고 매운 성질을 이용한 것 등이다.

감기 얘기가 나왔기 때문에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일반적으로 감기는 바이러스 질환이기 때문에 2차감염이 되지 않는 한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기미론으로 해석하면 항생제는 대부분 쓰고 찬 성질에 설사도 잘 일으키기 때문에 감기로 유발된 인체의 염증반응을 효과적으로 제어해 준다고 할 수 있다.물론 당장의 증상학적인 관점이 아니라 면역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득보다 실이 훨씬 많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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