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지방자치가 처음 시작된 것이 1949년이다. 이 때 제도를 만들고 자치단체에 지방의회를 두며 조직, 권한도 법으로 정했다.

1960년에는 시장과 도지사까지 직선제로 선출하는 지방자치의 큰 획을 긋기도 했지만 1년 후 군부는 지방의회를 강제로 해산시키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물들을 세우는 임명제로 바꿔 버렸다. 그 후 30년이 지난 1991년 지방자치가 재도입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질곡의 역사에 우여곡절도 많고, 역량부족과 법이 미비하여 단절의 시간도 있었지만 참여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좋은 제도에도 한심하고 나쁜 사례들이 있다. 선거로 선출되다 보니 성과물을 남기기 위해 무리수를 두어 엉터리 수요조사로 논리 근거를 만들고, 다른 지역에서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한다는 식의 사업들을 만들어 결국 수요가 따르지 않아 처치곤란, 흉물이 되어 매년 엄청난 혈세를 관리비로 써야하는 지경의 이야기들을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연말이 되면 땅을 파헤쳐 멀쩡한 보도블럭을 교체하고 선심성 예산을 책정하는 등의 이야기는 이제 하도 많이 들어 무감각해질 지경이다.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책임을 지게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법을 만들어야 하고 인식을 개선하려는 교육과 대화, 민관의 논의구조도 만들어야 한다.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어떤 구호나 노력도 찻잔 속 태풍처럼 확장되지 못할 것이다.

필자는 마을 활동을 시작한 지난 4년 동안 열정을 페이 삼아 열심히 마을에서 일을 만들고 이웃들과 동고동락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잘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좋은 관계를 만드는데 애썼다.

그 결과로 주민자치의 전국적인 모범사례가 되었고 신뢰를 기반으로 마을의 모든 단체를 아우르는 주민협의회를 안착시켜 마을 축제와 정원 만들기 등 온 마을이 함께 하는 사업도 무리 없이 할 만큼 체계가 잡혔다. 국회에 가서 사례발표도 하였고 행정안전부도 마을을 방문하여 자치의 좋은 사례라는 평가를 내려줬다.

이런 결실을 맺기까지 필자보다 더 열정적으로 일해 준 가족 같은 마을의 활동가들이 있다. 때론 일하다 하루에 한 끼도 못 먹는 경우도 있었고 찻값이 없어 공원 벤치에서 회의하기도 했다. 마을을 마음대로 주무른다는 따가운 시선도 있었고 견디기 힘든 뒷담화도 들어야 했지만 마을은 그렇게 시끄러운 것이 정상이라 생각하고 견뎌왔다.

지난해 혁신읍면동에 선정되면서 마을활동가 2인 활동비 지원을 정부로부터 약속받았지만 국회에서 보수당이 주장한 좌파 일자리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전액 삭감됐다. 필자가 활동비 달라고 떼쓰는 것이 아니라 열정페이를 강요당하는 마을의 활동가들이 자기 돈 써가면서 마을 일에 얼마나 더 결합할 수 있을까 하는 심각한 걱정 때문이다. 열정만 가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힘든 마을살이에서 견뎌낼 수 있을까! 그들이 사라지면 마을은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콘크리트 숲으로 남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마을을 가장 잘 알고 마을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마을활동가들을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제 국가가 나설 문제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지원해 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상근하는 활동가를 통해 관리도 하고 아이디어도 내고 다른 지역과의 네트워크도 만들어야 하고 자료도 정리해야 한다.

이런 전문적인 일들을 열정만 가지고 하라 하는 것은 염체 없는 일이다. 마을 활동가들이 생업을 찾아 떠나는 것은 국가로서도, 주민자치로서도 손실이자 동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적어도 마을의 자원을 모아 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진 활동가를 발굴해 지원하고 힘을 실어주는 일을 국가가 해야 한다.

주민자치의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열쇠는 국가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마을에 그릇된 사상이나 이념으로 편을 가르고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몰상식하고 불행한 일이다. 마을 활동가들이 그렇게 색안경을 쓰고 손가락질 당할 만큼 문제가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어떻게든 좋은 마을을 만들어 보겠다는 열정에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함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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