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법정-제암리 학살범 결심재판
 
1919년 4월 15일, 우리가 사는 안산에서 차로 불과 30분 거리의 화성시 제암리 제암교회에서 일본육군 제79연대 소속 아리다 중위가 이끄는 11명의 일본군인에 의해 무려 23명의 남녀노소 민간인이 갇힌 교회건물 안에서 참변을 당했다. 더욱 천인공노할 일은 갓난 애기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절규하면서 창문 밖으로 내던진 핏덩이 생명마저 이들은 철저히 외면했다. 이들이 과연 군인인가, 괴물인가. 그런데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책임자 아리다 중위에 대한 문책은 흐지부지 끝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사건발생일 100년을 한 달여 앞두고 이들을 소환해 역사법정에 세워보기로 한다.
 
재판장: 피고인 사실관계를 인정하는가?
(피고인) 아리다: 인정한다. 나는 일본제국의 충실한 군인으로서 본분을 다했을 뿐이다. 이 세상의 중심에는 천황이 있고 천황폐하를 거역하는 것은 패역무도한 반역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런데 제암리 교회 사람들은 지난 3. 1.절 인근 발안장터에서 진행된 만세운동의 주동자 역할을 했다. 특히 지난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면면을 보면 기독교인이 절반을 넘는다. 그래서 기독교인들 및 지난 만세운동의 주동자들이 어떻게 처벌받는 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싶어 제암리 교인들을 집회를 미끼로 교회로 유인한 후 가두고 불을 질렀다. 혹시나 나중에 말썽이 날 것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재판장: 양형을 정하기 위해 사건 사흘 후 현장을 답사하고 참변 실상을 세상에 알린 스코필드 선교사의 증언을 듣겠다.
스코필드 선교사: 나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교수이자 선교사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사흘 만에 미국선교사 언더우드에 의해 참상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감시망을 피해 자전거를 타고 수원에서 화성까지 달려가서 끔찍한 그 현장을 직접 목도하였다. 나는 의사이기도 하였으므로 시체의 상황 등을 통해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기가 수월했다. 내가 직접 목도한 내용과 생존자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이는 그야말로 인간을 탈을 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파악한 전모는 이러하다.

사건 당일인 4월 15일은 화요일이었다, 한 무리의 일본군인들이 마을에 들어와서 강연이 있다고 마을 주민들을 제암교회에 모이라고 하였고 순박한 마을 사람들 20여 명이 교회당으로 왔다. 그 때 갑자기 군인들은 출입문과 창문을 굳게 잠그고 안에 있는 사람들을 총칼로 학살한 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교회당에 불을 질렀다. 이로 인해 교회 안에서 22명, 밖에서 이들을 구하거나 연이어 불붙은 집에서 탈출하려다 죽은 사람 6명 총 28명이 살해되었고 민가도 불에 타서 31채가 전소되었다.

나는 이 증언을 수록하여 ‘수원에서의 잔악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미국으로 보냈고, 이로 인해 이 천인공노할 만행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점을 불행 중 다행으로 생각한다.

재판장: 피고인의 자백과 결정적 증인의 증언으로 피고인은 28명의 무고한 인명을 살인한 1급살인죄의 중죄를 저질렀음이 명백한 사실로 들어났다. 역사특검의 구형을 듣고자 한다.
특검: 아리다 중위는 아무리 천황과 황국을 위한 우국지심의 발로에서 본건을 저질렀다 해도 하나님이 주신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기본적으로 주신 선한양심에 적극적으로 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천황위에 하나님이 계심을 똑똑히 보여줘야 한다. 영겁의 세월동안 방화 살인으로 고통 받으면서 죽어간 피해자들과 똑같은 고통을 느끼는 불의 온도에서 종신 징역형을 선고해 달라.
재판장: 피고인 최후 변론하라.
 

(피고인) 아리다: 잘못은 인정한다. 다만 나는 젊은 군인으로서 명령에 죽고 살려고 했을 뿐이다. 난징사건과 만주사변의 가해자들과 형평을 맞추어 주었으면 하며, 끝으로 본건은 100년이 다 되었으므로 공소시효가 지났으니 선처해 달라.
 
재판장: 판결을 선고한다.
먼저 특검의 구형논리를 받아들여 천황 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점을 본 역사법정을 통해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형량과 관련하여 피고인의 변소요지를 차례로 살펴본다. 첫째 명령에 따른 정당행위 주장과 관련하여, 잘못된 명령은 면책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 둘째 인명 피해는 머리 숫자의 많고 적음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다. 한 생명이 우주보다 귀하다. 그리고 28명의 인명 피해가 적다고 생각하는가. 피고인은 아직도 개정의 정이 부족하다. 셋째 역사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검사의 구형을 그대로 받아들여 영겁의 세월동안 지옥불에 감금한다. 다만 감형의 조건이 있다. 아리다 중위의 조국이 동시대의 잘못에 대해 진지하게 사과할 것,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성의 있는 사과와 보상을 할 것, 강제징용판결 내용대로 아무 토를 달지 않고 수용할 것, 독도문제에 대해서도 더 이상 시비를 걸지 말 것, 피해자 28명의 합의서와 처벌불원서를 받아올 것. 이상의 요건이 충족되면 불의 온도를 100도 낮추어 줄 수 있다. 이상.
 
이 역사법정 판결을 나라를 위해 만세운동을 하다 희생당한 제암리 교인들과 유족들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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