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 <소설가>

몇 년 전부터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유행어이다. 위기에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나라에 대한 비판으로 하는 말이다. 개성화 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든 욕구를 정부나 그 어떤 단체나 종교도 다 수용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방법으로 살아간다. 획일화 된 현대 문명에 깃들여진 우리는 다양성을 인정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고, 이런 사람들의 개성이 못마땅할 때도 있다.
 나의 지인은 공학을 전공하여 전기사업을 하다가 은퇴하였다. 은퇴기념으로 그간 전기업체에서 쌓은 이야기를 써서 책을 냈다. 보통 이런 자서전적 이야기는 어려움을 겪고 성공한 성공담이 주인데, 이 분은 작고 사소한 이야기까지 더구나 창피한 이야기도 솔직하게 써서 인상 깊었다. 그리고 비매품으로 책을 만들어 전기업계에 일하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라고 나누어 주었다. 여기까지는 흔히 있는 일이다. 이 분의 특별한 일은 지금부터다.
 지난 3년 간 『을사오적 뒤에 숨은 친일파들』이라는 책을 내기 위해 60여권의 책을 읽고 자료를 정리해서 준비를 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을사오적 뒤에 수많은 친일파들이 일제강점기에 우리민족과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는데 가담한 것은 알고 있지만, 그들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누구인지는 을사오적 외에는 잘 모른다. 우리는 농담으로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라든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나”라는 말을 했는데, 실제로 을사오적은 나라를 팔아먹었고, 그들과 같이 앞장서서 친일 한 사람들은 많았다.
 이 분은 TV 뉴스를 보다가 이순신장군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가 일제에 부역한 김은호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들이 일상에서 보고 느끼는 많은 예술작품의 작가들이나, 정치, 경제, 문화계에 숨은 친일파가 많다는 것을 알고 그 사실을 파헤치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혼자서 수많은 자료를 찾고 집필하여 원고지 2,000매 분량의 『을사오적 뒤에 숨은 친일파들』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이 책 또한 모두 자신의 비용으로 비매품으로 만들어 주변의 지인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는 것이다.
 팔순을 바라보는 연세에 손글씨로 쓰고 지우느라 손목에 파스를 붙이고 생활하며, 책제작비를 마련하려고 생활비를 아꼈다. 책 쓰느라 외출을 안 하니까 친구들도 자연히 떨어져 나가고, 사람을 안 만나니, 밥 값 차 값이 안 들고 혼자 공부하고 글쓰기에 더없이 좋았다고 한다.  거액의 책 제작비용으로 노년에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그러나 유명세를 타거나 돈을 버는 일이 아닌 자신이 뜻있는 작업을 해서 후손들 단 몇 명이라도 역사를 바로 알고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라고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도 '세계적 대유행(Pandemic)'을 선언했다. 이런 세계적 어려운 시기에도 사람들은 나라 탓을 하거나 신천지 탓만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적극적으로 대처에 임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확진자 중에 한 분은 일기로 자신이 만난 사람들과 다닌 곳을 기록하여,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고, 코로나 앱을 만들어 무료로 제공하거나 음식물 상자를 준비하여 코로나19로 자가격리 중인 시민들에게 물품을 직접 배달하는 자원봉사자들. 거액의 성금봉투에 이름도 쓰지 않고 몰래 두고 가는 사람. 금보다 귀하다는 마스크를 구해서 무료로 대구에 보내는 사람. 도시락이나 숙박업소를 제공하는  사람들. 모두 명예나 돈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다.
 위기에 사람의 가치와 정이 빛을 발한다. 이게 나라인가하고 투정부리고 불평불만을 쏟아내기보다는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작가인 나는 이 일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과 개인위생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건강하여 감염되지 않는 일. 그것이 가장 중요한 나의 나라를 위한 일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업을 혼자 묵묵히 하는 사람들.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진정 애국자이고 예술가가 아닐까. 그런 사람들이 많이 사는 나라. 우리가 진정 바라는 나라는 이런 나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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