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소설가>

오랜만에 도자기 공방에 나갔다. 오랫동안 쉬어서 물레를 잡는 손이 떨린다. 흙은 내가 원하는 데로 성형되지 않고 자꾸 흔들려서 중심 잡기가 어려워진다. 흙을 풀어 주고 중심을 잡는 일을 여러번 해야만 비로소 도자기를 만들 바탕이 된다. 손에 물을 묻혀 만들고자하는 모양을 만드는데 흙과 씨름만 한다. 균형이 맞지않아 양손과 물레를 밟고 있는 발에 힘을 주다 보면 어느듯 손과 발에는 쥐가 나기 마련이다. 끊임없이 흙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원하는 모양이 나오지 않으면 부수어 버리기를 수도없이 반복한다.
 도자기는 흙과 물 그리고 불이 어울어져 작품이 완성된다. 열심히 만들어도 약간의 두께가 일정하지 않아도 불에 두 번씩 소성燒成을 하고나면 모양이 비틀어지고 망가진다. 여간 섬세한 작업이 아니다. 의욕은 앞서지만 만들어져 나오는 작품은 볼품 없고 조악하다. 아깝지만  깨어버린다.

페넬로페이아, 페넬로페라고도 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아내이며, 스파르타의 이카리오스와 물의 요정 페리보이아 사이에 태어난 딸이다. 그리스군이 트로이를 함락한 뒤 10년이 지나도록 그의 남편 오디세우스가 돌아오지 않고 있을 때, 그의 고향 이타케의 저택에는 젊은 귀족들이 모여들어 남편을 기다리는 페넬로페이아에게 구혼을 하면서 밤낮으로 연회를 벌인다. 그녀는 이 구혼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궁리하던 끝에, 오디세우스의 아버지 라에르테스의 수의를 다 짤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한다.
 그녀는 그 후 낮에는 베를 짜고 밤이면 그것을 다시 풀고 하여 시간을 끌었다. 이렇게 3년의 세월이 흘러간 어느 날, 하녀가 이 비밀을 구혼자들에게 누설하고 말았다. 결정적인 순간 출정 후 20년 만에 돌아온 남편 오디세우스가 그 구혼자들을 응징하였다. 남편의 오랜 출타 중에도 절개를 지키면서 많은 구혼자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남편이 살아 돌아올 것을 굳게 믿은 페넬로페는 열녀의 귀감으로 두고두고 칭송되고 있다. 페넬로페에는 원앙·오리라는 뜻이 담겨 있다.
 다 지은 옷감을 풀어내는 페넬로페, 그것은 어딘지 모르게 상당히 문제적이었다. 페넬로페는 왜 옷감을 풀어냈을까. 왜 그녀는 하필이면 수의를 지었을까. 물레 앞에 앉아 수의를 짓는 낮의 페넬로페, 모두가 잠든 이슥한 밤이 되면 낮에 지은 옷감을 온 몸으로 감아 풀어내는 페넬로페. 그녀, 페넬로페는 사실 오디세우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관계의 그물을 짜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다가올 판결의 시간을 유예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인의 평판을 얻기 위해서는 이해를 도모할 대의명분이 필요했다. 대의명분으로 가장 적합한 것이 뭘까. 영리한 페넬로페는 자신의 남편을 낳아준 시아버지 라에르테스의 수의를 골랐다. 페넬로페의 계산은 적중했다. 시아버지의 수의를 짜는 동안에는 그 누구도 그녀에게 구혼하지 못했다. 페넬로페는 낮에는 수의를 짜고 밤에는 그 수의를 다시 풀어버렸다. 3년이란 시간동안 낮의 시간은 세상의 시간이었고 밤의 시간은 페넬로페만의 시간이었다. 반복적으로 옷감을 짜고 다시 풀어내면서 페넬로페는 희열을 느꼈다.
 현명한 페넬로페는 영원히 지어지지 않을 수의를 짜면서 불멸의 시간을 만들어 나갔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오디세우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영웅이라 부르지. 그렇지만 적어도 내게 그는 영웅이 아니야. 그는 영웅이기 전에 나의 의지대로 선택한 내 삶의 징표. 나는 그 의미에 대한 예의를 지켜나가야만 한다. 내 삶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이 밤을 보낸 후 나는 또 아침을 맞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밤이 되기를 기다리며 수의를 짤 것이다. 하나 그 수의는 영원히 죽음이 없는 시간의 것은  의미를 완성하고 싶은거야. 사람들은 모르지. 내가 이렇게 불멸의 시간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상처를 만들지 않고도 무엇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고도 유연하게 시간을 창조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삶을 누리다보면 언젠가는 오디세우스가 돌아온 것처럼 지혜나 깨달음이 다가올런지도 몰라.
 나는 지금 그 옛날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신화의 시간 속 페넬로페가 옷감을 짜듯 물레를 돌린다. 흙을 올렸다 무너뜨렸다를 반복하며 흙과 싸운다. 열정에 대한 망각으로 도자기를 만든다. 옷감을 풀어내는 시간, 도자기를 만드는 시간, 페넬로페가 시간을 멈추는 시간, 내가 내 안으로 파고드는 시간. 나만의 향유를 누리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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