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진세<작가>

어릴 적 옆집에는 사나운 개 한 마리가 있었다. 몸집은 중간 크기에 온몸이 시커먼 검둥이였다. 눈은 이상할 정도로 튀어나왔고 눈동자가 노랬다. 모습이 하도 괴기스러워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녀석은 나만 보면 사납게 짖으며 쫓아왔다. 그래서 항상 조심해서 집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날도 하굣길에 무심코 걷고 있었는데 뒤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옆집 검둥이임을 직감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하지만 녀석의 거친 숨소리가 너무 가까이 들렸다.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결국, 놈과 결투를 벌여야 하는가를 결정해야만 했다.
 결투를 작정하고 모퉁이를 돌아서서 돌멩이를 집어 들고 자세를 낮춘 채 녀석을 향해 돌아섰다. 매서운 놈의 시선과 마주쳤다. 두 눈 사이에 번쩍하고 섬광이 일어나는 듯하였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이내 달려들 것처럼 으르렁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다. 드러난 이빨 사이로 흐르는 침에서 지독한 냄새가 토를 할 정도로 후각을 자극한다. 녀석에게 물리느냐 마느냐 하는 숨 막히는 대치상황이다. 단,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순간이다.
 녀석은 빈틈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1m 남짓의 거리를 두고 녀석을 매섭게 노려보며 기 싸움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밀리면 녀석에게 당하는 것은 뻔한 이치다. 이때 녀석의 미간이 심하게 흔들렸다. 다리도 심하게 떨고 있었다. 녀석은 기 싸움에 밀려 겁을 잔뜩 집어먹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덤벼~~~”라고 외치며 손을 높이 들어 내려칠 듯 한발 앞으로 다가섰다. 녀석은 심하게 놀란 듯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꼬리를 뒷다리 사이에 깊숙이 집어넣고서 나를 쫓아 오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도망쳐 버렸다. 의외로 승부는 싱겁게 끝나버렸다.
 사람이 위기에 몰리면 가공할 만한 힘이 나온다고 하였던가. 소심하기만 하던 내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그 일이 있고부터 검둥이는 나를 보면 꽁지가 빠지도록 도망을 쳤다. 그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나는 몸은 허약하여 툭하면 앓아누웠다. 어머니는 매번 얻어맞고 들어오는 나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덩치는 태산만 해서 왜 비싼 밥을 먹고 매일 맞고 다니느냐. 밥을 굶겼냐. 고기를 안 먹였냐? 이놈아 덩칫값 좀 하고 살아라.” 하시며 속상해하셨다.
그렇다 해도 이유도 없이 옆집 똥개한테까지 쫓기며 살아가는 인생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매사에 주눅이 들어서인지 모든 일에 도전하여 보지도 않고 자포자기하는 일이 많았다. ‘나한테는 너무 힘든 과제야.’,‘ 내가 저 일을 할 수나 있겠어.’ 하고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는 그것이 문제였다. 매사에 스스로 주어진 과제나 일을 해결하여 나가는 능력도 의욕도 없었다.
 하지만 검둥이하고의 싸움 한판은 내 인생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자신감을 얻은 나는 몰라보게 변해 가고 있었다. 소심하던 성격은 적극적인 돌파형으로 변하여 갔다.
형을 졸라서 태권도장이며 복싱체육관을 따라다녔다. 각종 격투기를 배운 후부터는 기운이 제일 센 학급 친구들도 나한테 함부로 하지 못했다. 이제 나를 얕잡아 보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자존감을 회복하니 내 인생은 큰 폭으로 변하여 갔다. 검둥이와 싸워 이기기 전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말고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도전하여 보자’라고 스스로 다짐하였다. 우선 포기하였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후 실력이 부쩍 늘었다. 자신감이 붙은 나는 이번에는 기타연주를 배우기로 하였다. 이웃집 형이 기타 치는 모습을 늘 부러워만 하였다. 용기를 내어 무작정 찾아가서 기타를 가르쳐 줄 것을 청하였다. 나날이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 신기하였던지 이종사촌 형은 멋진 기타를 선물하였다.
 기타를 배우고부터는 성격이 차츰 외향적으로 변하면서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겼다. 내 곁에는 항상 기타가 있었고,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멋진 기타연주로 분위기를 잡았다. 그때부터 나는 무엇을 하든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솔선수범하였다. 학교에서 오락 시간은 내가 주인공이었다. 기타 치고 노래하고 사회도 보면서 전체를 이끌어 갔다.
부모님은 성격이 바뀌는 것을 보며 무척 대견해하신다. 검둥이와의 한판 싸움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내 인생 전환의 계기가 되어준 그때 그 검둥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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