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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진세칼럼]아제아제바라아제(揭諦揭諦波羅揭諦)
  • 안산신문
  • 승인 2022.11.0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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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진세<작가>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사용하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과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몇 장,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무소유 중에서 - 법정 스님)
법정 스님은 ‘간디’의 글을 읽고서 매우 부끄러웠다고 한다. ‘간디’가 소유한 물건과 스님의 소유물을 비교하며 자책을 한 것이다. 산중에서 수행하며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며 살다가 가신 스님은,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청정한 마음으로 살아오신 분이다.
스님의 무소유 열풍이 사그라지나 싶더니, 이제는 Minimal life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유행처럼 늘어나고 있다. 나도 최소한의 것만으로 생활하여 보기로 하였다. 본래 필요하여서 사들인 물건이었지만 소용이 다 한 물건을 먼저 버렸다. 사용 빈도가 떨어지는 물건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거나 재활용센터에 보냈다. 1년 동안 단 한 번도 입지 않던 옷들은 등도 재활용 수집 통에 집어넣었다. 평생 아끼던 책은 고전과 문학 서적만 빼고 필요치 않은 물건들과 함께 밖에 내놓았다.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셔도 됩니다’라고 써놓았더니 채 한나절이 가기 전에 모두 사라졌다.
내가 버릴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다. 온갖 잡다한 생각으로 가득한 마음도 비우기로 하였다. 이순(耳順)까지 살아오는 동안 쌓였던 삶의 상처들은 평생 나를 괴롭혔다. 어릴 적 부모·형제 또는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기억들이 수시로 나를 힘들게 한 것이다. 인격이나 성품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다. “과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난 일은 현재는 어쩔 수 없는 흘러간 일이다. 머리를 싸매고 지난 일로 고민을 하여도 해결방법은 없다. 과거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그 기억을 버리고 비우는 것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만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과 걱정이 나를 평생 힘들게 하였다. 과거의 집착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행복할 수 있다. 나는 깊은 명상을 하면서 모두 비워내기로 하였다.
불가에서 말하는 하심(下心)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로 하였다. 서럽고 아파서 상처가 된 기억들이 집착을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집착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수록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집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인(自由人)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비운 자만이 비로소 얻을 수 있고, 많이 비우면 많이 얻을 수 있다. 모두 버리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던가.” 알 듯 모를 듯한 야릇한 화두를 잡고 명상수행을 시작하였다. 수행하던 중 작은 깨달음이 있었다. 상대를 용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여야 비로소 미워하는 마음을 비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당시 나를 힘들게 하였던 사람들을 이해하기로 하였다. 그러던 여느 날 거짓말처럼 기적이 일어났다. 상대가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라고 이해하게 된 것이다. 상대를 이해 하니까,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해묵은 감정이 모두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결국,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평생 나를 힘들게 한 것이다.
나를 힘들게 하던 사람들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용서란! 아직도 내가 옳고 네가 잘못이라고 아집(我執)을 부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확실하게 이해하니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이제는 마음에 아무런 집착이 없는 평온한 상태가 되었다. 드디어 서럽고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된 것이다.
나는 내친김에 명상수행을 계속하기로 하였다. “나를 죽여야 비로소 내가 살 수 있다”라는 간절함으로 여러 날을 보낸 어느 날이었다. 수행 중 나는 우주의 존재자(存在者)이고, 내가 곧 우주이며 우주가 곧 나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즉 다시 말해서 우주와 나는 둘이(不二) 아니고 다르지도(不異) 않다. 너와 나는 구별되는 상대적인 타인(他人) 이 아니고 원래부터 동인(同人) 이라는 사실을 체감하였다. 범아일여(梵我一如)를 깨달은 것이다.
바람 부는 어느 날 언덕에 올라 들판을 내려다보았다. 대지에는 비가 오기도 하고 바람이 불기도 한다. 흐린 날이 있으면 맑은 날이 있다. 태풍이 불기도 하고 미풍이 불기도 한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연의 모습은 내 삶을 위한 우주의 생존 법칙이었다. 자연은 나를 위하여 그렇게 대서사시(大敍事詩)를 쓰고 있었다.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나니 세상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어 좋다. 자연과 내가 하나라는 사실은 세상살이를 수월하게 해준다. 자연은 본시(本是) 아름다웠다. 자유인이 되어서 바라본 세상은 예상보다 황홀(恍惚)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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